한국일보

아이의 성적표

2006-06-11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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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

▶ 김수희 공예가

어느새 5장의 달력이 넘어갔다. 달력의 6번째장 중간쯤에 그려진 동그라미 안의 숫자는 끝과 시작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아이들의 한 학년이 끝나는 날이며 또한 여름 방학이 시작 되는 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은 기쁜 날인 동시에 걱정스럽기도 한 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년동안 공부를 아주 잘 하여서 부모님께 빨리 보여 드리고 싶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이라면 마냥 기뻐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과후 일차관문을 통과해야만 즐거운 여름 방학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의 성적이 웬만하다고 판단되면 그냥 웃고 넘어가는 편이다.
초등학교 때까지의 나는 공부를 썩 잘 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 조금씩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학교 이후로는 성적표 받아 들고 집에 가야하는 시간이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내 맘처럼 나와 주지 않는 숫자들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내 자신의 문제는 둘째이고 먼저 이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일이 제일 큰일이었다. 일기장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다음에는 더 잘 해서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내용으로 가득 채웠던 것 같다.
부모가 된 지금 그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어리석었던 것은 부모님이 성적표를 보고 야단치시는 이유가 당신들이 기쁘기 위해서가 아니고 나의 미래 때문이라는 것을 귀로만 들었을 뿐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과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난 겨울 중간 성적표를 받아 왔을 때 아이들에게 엄마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와 현재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같이 이야기 하였다. 한두 과목씩 못 마땅한 점수가 있었지만 전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아주 고상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대화를 했었다. 이제 며칠 후면 아이들이 올해의 성적표를 받아 올 것이다. 또 다시 대화의 장을 열어 볼 마음이 생길지, 엄마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적표를 들먹이며 큰 소리를 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수희/ 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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