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화를 즐기자.
요즈음 중국의 젊은이들이 그렇게나 한국 스타일에 열광한다고들 한다. 그들이 미국 문화를 받아드리기에는 거리상 너무 멀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우리는 머나먼 미국의 문화를 쉽게 받아드렸음을 생각해본다. 불행 중 다행인지 전쟁 탓으로 우리는 미제 껌, 미제 연
필, 미제 옷 뿐 아니라 음악도 미제를 좋아했고, 나 역시도 우리 정서와는 아주 다른 록엔 롤이며 재즈며 온갖 미국 대중음악들을 AFKN방송까지 들으면서 열심히 들었었다. 미국만 가면 이 모든 것을 실컷 즐길텐데....미국을 동경했었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 와서는 미제사탕 맛도 별루고, 팝송을 따라해 볼 겨를도 없이 바삐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차 속에서 그 옛날 한국서 듣던 팝송만을 해주는 라디오방송을 찾았다. 한곡 한곡마다 학교 앞 찻집이며, 군밤냄새가 진동하는 한겨울 밤 동네 골목길이며 하루도 안 빼 놓고 만나 쏘다니던 친구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예전에는 몰랐던 가사들이 이제는 이곳에서 얻은 경험과 함께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왔다. 가끔씩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느끼곤 하는 것은 ‘미국에 오기 잘했다’이다.
또한, 전기기타 친다고 껍적대는 아들 녀석이 제 깐에는 ‘클래식 록(Classic Rock)’이라고 치는 곡들을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날 존경하는 눈치였는지. 나의 어머니가 ‘아이구 시끄러워, 사람 목소리 좀 듣자’던 그 음악에 [클래식]이란 이름을 붙여놓은 미국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가수 레이 챨스, 바비 다링에 이어 얼마 전 칸츄리송의 대가라는 쟈니 캐시의 영화 [Walk the line]이 개봉되었다. ‘Hello I am Johnny Cash!’하고 시작하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저 멋있다고 만 여기던, 감옥에서의 공연은 비록 영화였지만 감격스러웠다.
미국 사람들은 흘러가 버릴 대중문화를 사랑할 뿐 아니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옛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월이 변하고 있지만, 내가 6살 때 처음 써보던 노란 색 미제 연필을 아직도 한 타스 씩 자녀들에게 사주고 있으며, 50년, 60년대 신문 잡지 광고까지도 다 보전
하여 뮤지움에서 전시를 한다. [라디오와 텔레비젼 뮤지움(Museum of Radio & Television)]에서는 70년대 초 한국서 방송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택시타고 집에 올 정도로 재미있게 보던 미국 연속방송극 ‘야망의 계절(Rich Man, Poor Man)’을 찾아보고 추억에 젖어보기도 했다. 한국서 계속 살았다면 이 맛을 어떻게 알겠는가...누구에게나 미국을 동경하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제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미국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한없이 한국을 그리워하기 이전에 미국을 한껏 누려 볼 수 있는 쉬운 요소들을 곳곳에서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