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크리스마스 시(詩) 감상

2005-12-26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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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백 칼럼

▶ 백 순/화백문학 워싱턴지부장, 노동성 선임 경제학자


크리스마스는 어두움에 빛을 밝혀 주고, 절망 가운데에 소망을 주며, 그 빛과 소망에 무릎꿇고 경배하는 의미를 간직한 절기이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 시가 지난 2000여 년 동안 온 지구상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만, 2005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그 진의를 아로새긴 3편의 시를 감상하기로 하자.
/ 오 베들레헴의 작은 골! / 우리는 네가 얼마나 조용히 누어있음을 본다, / 너의 깊고 꿈없는 잠을 넘어, // 조용한 별들이 지나가고; / 아직도 어두운 거리에 / 영원한 빛이 비추인다; / 모든 세월의 희망과 두려움이//오늘 저녁 네 안에서 만나는 구나. /
이 시는 우리가 어릴 적에 교회 주일학교에서나 동네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마다 소리 높여 기쁘게 불렀던 크리스마스 캐롤의 가사이다. 그리고 이 시는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 1835-1893) 시인이 1868년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읊었던 시의 구절이다. 시인은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자는 잠’에 ‘조용히 흐르는 별들’을 대비시키고, ‘어두운 거리’에 ‘영원한 빛’을 대조시킴으로써 어두운 인간세상을 결국에는 밝게 해 줄 빛을 형상화한다. 어두움에 대응하여 빛이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끈끈한 진리는 그 어두움과 빛, 온 인간역사의 두려움과 소망이 아기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빛이 아무리 밝고, 소망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어두움과 마주치지 아니하고 절망과 부딪히지 아니 한다면 그 빛과 소망에 무슨 유용이 있겠는가? 크리스마스는 바로 그 만남과 부딪힘을 만드는 절기인 것이다.
/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시계의 12 시. / “지금 그들 모두 무릎을 꿇는다”고 / 장로가 말했다 우리가 // 무리 지어 노변 등걸 불가에 편히 앉아 있을 때에. / 우리는 유순한 동물들을 그려보았다 / 지푸라기 가득한 우리에 살고 있는 동물들, / 그 때 동물들이 무릎 꿇고 있었음을 /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 환상의 몇 몇 사람들이 그 많은 세월 속에 / 이야기를 지어냄이 그렇게 아름답구나 / 그러나 나는 느낀다 // “와서 소들이 무릎 꿇음을 보라 / 저 먼 골짜기 외로운 농가마당에서, / 우리 어린 시절이 잘 기억하듯이”라고 / 누군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말한다면 / 나는 어두움 속으로 그와 함께 갔을 것이다, // 소들이 무릎꿇고 있음을 바라며. / (‘소들’, Thomas Hardy(1840-1928)).
토마스 하디는 어두움을 만나는 빛, 절망과 부딪히는 소망을 향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소들이 무릎을 꿇는 것과 같이 겸손히 무릎꿇고 경배하는 것이야말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가장 좋은 태도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 꽃다발이 화려하게 걸려 있는 / 유니온 스테이션 뒷골목 / 누더기 쓰고 / 움츠리고 있는 거지들 속에서 // 한 아기의 탄생을 본다 // 크리스마스 나무가 찬란하게 높이 우뚝 서 있는 / 백악관 앞 큰 뜰 너머 // 화락과 범죄가 / 뒤범벅이 인종들 소에서 / 한 아기의 탄생을 바라본다 // .... // 민주와 방종이 // 번영과 과소비가 엉클어진 / 서울의 번잡한 인파 속에서 / 주체와 억눌림이 / 혁명과 빈곤이 공존하는 // 평양의 장례식 인민들 속에서 / 한 아기의 탄생을 바라본다 // 질병과 가난과 / 전쟁과 범죄와 // 어쩔 수 없이 / 죽어가야 하는 생명 속에서 / 한 아기의 탄생을 전파하리라 // (‘탄생’, 백순, ‘크리스마스시집’ 1999).
한 아기의 탄생은 2000여 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바로 유니온 스테이션 뒤 거지들, 백악관 뒤 인종들, 서울의 인파, 평양의 인민들 가운데에 일어나고 있음을 형상화한다. 어떠한 모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 인류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아기예수의 탄생을 온 누리에 알리는 것이 크리스마스를 보람있게 맞이하는 자세일 것이라고 시인은 내다본다.
어두움과 빛이 만나는 곳, 절망과 소망이 부딪히는 곳인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을 소리 높여 힘껏 노래하고, 그 빛과 소망에 무릎꿇어 경배하며, 지구 오지에 이르기까지 온 누리에게 아기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데에 힘 쓸 것을 다짐하면서 2005년의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맞이하기로 하자.
백 순/화백문학 워싱턴지부장, 노동성 선임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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