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워싱턴 부동산 시장에도 서리가 내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호황을 기록했던 워싱턴 부동산 시장은 올 여름 피크를 맞이한 뒤 가을 들어 본격적인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부동산 시장 냉각의 여파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지역은 훼어팩스를 비롯한 북버지니아 지역. 최근 몇 년간 호황을 주도한 만큼 타격 역시 가장 크게 맞고 있다.
워싱턴 지역의 멀티플 리스팅(매물 데이터베이스 서비스) 업체인 MRIS는 1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워싱턴 지역의 식어가는 부동산 열기를 숫자로 보여줬다.
북버지니아 지역의 10월 현재 부동산 매물은 7,122채로 작년 동기 3,254채의 2.2배에 달했다. 매매 건수 역시 작년10월보다 30%나 줄었으며, 매물이 시장에 머무는 기간도 13일이나 늘어났다.
가을 들어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자 많은 주택 소유주들이 오른 집값을 현금화하기 위해 대거 집을 내놓았지만, 가격이 너무 오른 탓에 바이어는 크게 줄어들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워싱턴 DC와 라우든 카운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작년 10월과 비교할 때 워싱턴 DC 매물은 62% 늘고 매매는 28% 줄었다. 라우든 카운티도 매물이 1.2배나 늘어난 반면 매매는 23%가 하락했다.
워싱턴 DC와 북버지니아 모두 거래가 20~30%나 줄어드는 된서리를 맞고 있는 한편, 호황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덜 누린 메릴랜드는 하락폭 역시 작은 편이다.
몽고메리 카운티는 매물이 49% 늘어났지만 거래 감소는 8%에 불과했다. 앤 아룬델 카운티는 거래가 오히려 5% 늘었으며,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에선 매물이 시장에 머무는 날짜가 7일이나 줄어들었다. 이는 중심 지역의 집값이 너무 오른 탓에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외곽으로 매기가 몰리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MRIS는 워싱턴 지역의 10월 매물 숫자는 지난 90년대 말 이래 최대라고 밝혔다. 2003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맹위를 떨치면서 워싱턴 지역의 부동산 매물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지만, 올 가을 들어 6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설명이다.
수치상으로는 물론 피부로 느끼는 부동산 시장 냉각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2002년 센터빌 집을 매물로 내놓은지 단 다섯시간만에 팔고 게인스빌로 이사간 30대 부부는 최근 집을 내놓았지만 3주가 되도록 바이어의 발길이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포스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최근 몇 년간 맹위를 떨친 분야일수록 타격도 크다. 최고의 경기를 구가한 콘도 시장이 대표적이다.
한인 K씨는 지난 5월 알렉산드리아의 신축 콘도를 79만6천 달러에 구입했다. 그는 이 콘도를 비롯해 딸·사위 등의 명의로 8채나 되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입주도 안한 이 콘도의 시세가 현재 69만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0만 달러나 값이 떨어졌으니 5만달러를 다운페이하고 집을 산 그는 집을 팔려면 오히려 현금 5만달러를 모기지 은행에 갖다 줘야 하는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 있다.
K씨는 “렌트를 주자니 렌트비 시세가 너무 낮아 손해가 크고, 헤이마켓 집을 팔고 입주하자니 부동산 매기가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이 돈을 물어다 주는 도깨비 방망이였다면, 이제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돈을 덥석덥석 물어가는 다른 도깨비가 돼가고 있는 현실이다.
부동산 에이전트 L씨는 “집을 몇 채나 갖고 계신 한인이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는 부동산 냉각기에 곤욕을 치르기 쉽다”며 “모기지를 감당할만한 자금 조달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집이 경매처분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매 부동산을 사들이는 전문가들은 오히려 현재의 시장 상황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전문가는 “이자만 내는 모기지로 집을 산 사람들은 앞으로 2~3년간 이자율 상승 때문에 월 페이먼트가 크게 오르는 경험을 할 것”이라며 “집을 몇 채씩 사들인 사람을 포함해 모기지를 감당하기 힘든 주택 소유주들이 급증할 것이므로, 2~3년 내에 경매물건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