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세월의 속도

2005-11-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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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서<소노마한국학교 교장>

세월의 속도 어제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즈음 시속 46마일로 달리고 있답니다. 네? 시속 46마일로 달리시다니요? 제 나이가 마흔 여섯이잖아요. 세월은 자기 나이와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고 하니 그렇지요. 아니, 그럼 저는 시속 60마일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거예요? 어쩐지 세월이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엊그제 가을학기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는데 흐르는 물의 속도가 빨라진 것인가? 첫돌을 지낸 손자 신이에게 신이는 몇 살?하고 물으면 빙그레 웃으며 집게손가락 하나를 쏘옥 내밀어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앙증스러워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자꾸 물어보며 아유, 아직도 한 살이야?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첫돌 아기의 1년은 그야말로 시속 1마일에도 못 미칠 정도로 느리고 더딘 것 같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날마다 한 살 그대로 멈추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11월을 기다렸다. 이유는 단 하나, 11월이 지나가지 않으면 12월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와 생일이 함께 들어 있었다. 1월부터 꼬박 열 한 달을 손꼽아가며 기다려야 했다. 11월이 가까이 다가오면 혜화동 로터리로 들어오는 전차 소리도 ‘냉냉냉냉’하고 더 맑은 소리를 내었다. 가로수 밑에 쌓인 낙엽들은 발을 옮길 때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낙엽 소리를 내주었다.
그땐 어김없이 군밤, 군고구마, 사과장수들이 그쳐버린 혜화동 분수의 물줄기를 대신해서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11월은 그렇게 느린 속도로 찾아왔다. 버나드 쇼오는 ‘당신이 지금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할 만큼 빈둥거릴 시간을 가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한 번쯤 빈둥거리며 세월의 속도를 재어보는 것이야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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