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K-2 비행장은 안개가 걷히면서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활주로가 흰 상아처럼 가지런히 녹색 잔디위로 길게길게 뻗어 가다가, 깜빡거리는 녹색 전광판 아래 멈추었다. 차 마이클은 달아나는 안개를 쫓듯 빠른 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새를 쫓기 위해 손에 쥔 총포가 무거워 어깨에 질 찰나에 안개를 뚫고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왔다.
아, 그랬다. 차 마이클의 아버지는 늘 어린 마이클을 데리고 인디아나 폴리스 비행장을 순회했다. 그리고 아버지 대신 긴 총포를 짊어지고 잽싸게 아버지를 따라붙었다. 햇살이 눈부시면 아버지 뒤에 숨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새가 난다, 마이클, 방아쇠를 당겨” 외치면 마이클은 잽싸게 나는 새를 맞추곤 했다.
차 마이클은 아버지가 그리웠다. 그가 6살 때쯤 아버지는 자기를 한국에서
입양해 왔다. 그리고 혼자서 마이클을 키웠다. 아버지는 제대 후에도 일과 마이클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11학년 때, 아버지가 당뇨와 고혈압으로 쓰러질 때까지 아버지는 마이클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셨다. 양로원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아버지는 ‘희망 고아원, 어머니 차성애, 평택’ 이란 한글이 적혀 있는 메모지를 마이클 손에 쥐어 주셨다.
차 마이클에게는 혼란이 왔다. 그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 때문에 실로, 아무도 이 세상에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이 없었다. 수시로 병문안 하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간호사들이 하는 일들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고 아버지를 씻겨 드렸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게 눈물을 흘리셨다.
1년 남짓, 마이클이 졸업을 앞둔 일 주일 전, 아버지는 한번도 가시지 않던 동네 성당 신부를 부르셔서 영세를 받으시고 다음날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자기의 연금과 꼼꼼히 모으셨던 현금과 편지 한 장을 남기셨다. 차 마이클은 왼쪽 윗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아들 마이클, 나는 너에게 정녕 아버지가 되고 싶은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나에게 그런 꿈을 이루도록 기회를 준 너에게 고맙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너의 친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지 못한 나를 용서하렴. 이제 너의 친부모를 찾아보렴. 이것은 나의 부탁이며 소원이다. 사랑하는 아비로부터.
카튜사 송 일병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 왔다. “차 마이클, 안내소에 희망 고아원 원장이 면회를 왔다”고 했다. 마이클은 총포를 차 일병에게 건네고 천천히 안내소로 향해 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내소에는 부대장과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은 유창한 영어로 고국으로 부모를 찾으러온 차 마이클을 환영한다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그녀의 두툼한 손가방에서 낡은 사진 두 장을 꺼내서 차 마이클에게 주었다.
한 장은 차 마이클의 4살 때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었다. 부대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다음달 자네가 입학할 비행사 학교가 있는 팬사콜라에 너의 어머님이 살고 계신다. 축하한다”라고 차 마이클에게 전근 명령서와 사진의 여자 주소가 쓰인 메모지를 주며 힘있게 악수를 건넸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