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애푸리캔 바이올렛

2005-10-1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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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주부>

동쪽 창가로 몇개의 화분에 보라색 바이올렛이 수줍은 꽃망울을 하고 가즈런히 자리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보며 물이 부족하여 흙이 마르지나 안았는지 손가락으로 짚어 보고 마른 잎파리도 떼어내며 정성으로 보살펴 주는 은혜에 보답하듯이 일년 내내 여러 화분에서 꽃망울을 터트리곤한다.
색 중에서 보라색을 선호하는 이유도 있지만 바이올렛은 키도 크지않고 번지지도 않으며 넓은 장소를 차지하지도 않아서 실내에서 키우기가 적격인 화초다.
25년전 미국으로 출국하기전 친한 친구집에서 베풀어준 송별회 사진을 보면 넓은 아파트 베란다 쪽으로 놓인 큰 화분대 위에 온통 바이올렛 화분이 놓여있다. 그 사진을 볼적마다 내가 처음 바이올렛을 키웠던 시절의 암울함이 떠오르며 회상의 심연으로 빠지게 된다. 갑자기 밀어 닥친 인생 역경의 파고가 이혼으로까지 치닫자 정신을 차릴수없는 환난속에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때 친구집에서 따온 바이올렛 잎을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리고 다시 화분에 옮겨 그 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참을수없는 울분을 삭히던 시간들, 얼마후 화분에서 싹들이 뾰죽 뾰죽 돋아날때 이곳으로 오게되었고 그후 20여년을 거의 잊고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5년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그분이 키우시던 바이올렛 화분을 가져와 정성껏 보살피면서 잎들을 따서 싹을 내고 그 싹이 자라 꽃망울을 맺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지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 보며 꽃 피기를 기다리던 어느날 , 드디어 수줍은듯 피어난 꽃은 원래의 밋밋한 보라색 꽃잎이 아니고 조름 조름 주름이 잡힌 가장자리로 하얀 선이 둘러진 아주 예뿐 꽃들이 피어났다. 다른 화분에서는 순 백색의 주름진 꽃이 피고. 너무 신기하여 사진도 찍어 두고 잎을 떼어 뿌리가 나면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며, 자상하시던 시어머니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았는데 돌아가셔서도 이렇게 줄거움을 느낄수 있어 그 원본을 지극히 보살폈는데 작년 여름, 꽃의 수명이 다 돼서 인지 굵고 탐스럽던 뿌리가 점점 말라 붙더니 그냥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서운한 마음을 금할길 없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여러 화분에서 나름대로의 자태를 뽑내는 꽃들을 보며 우리네 인생도 때가 되면 떠나 가지만 뒤를 이을 자녀들이 활기 차게 자라고 있음에 가슴 뭉쿨한 희열을 느끼곤 한다.
비록 나는 밋밋한 꽃잎처럼 한없이 부족하고 보잘것 없는 삶을 살아 왔어도 이곳에서 자유로이 보고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훨씬 풍요롭고 화려한 삶을 살고 있음에 마음 흐뭇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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