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엄지족

2005-10-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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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연<한국학교 교사>

삐리리~ 소리와 함께 아이는 셀폰을 양손으로 받쳐들고 두 엄지 손가락으로 뭔가를
열심히 눌러댄다.
삐리릿~ “엄마! 오빠가 집에 오고싶대”
“전화 왔었어?” “아니!” “근데, 언제 그래?” “으~응, 점 메일로…”
저희들 끼리 열심히 눌러 대며 아프다는 오빠를 위로하며 웃고 난리다.

제 오빠가 4년 정도 사용한 셀폰을 물려 받은 딸아이가 언젠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걱정이 되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 올랐는데, 전화가 들어오지 않았단다.
또 어느날은 한참 수업중일 시간에 “엄마 왜?” 하면서 전화를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도 했는데 이렇게 송수신이 좋지않은 낡은 전화로 인해 해프닝이 한 두 번 벌어진 게 아니었다.
얼마 전 개학 무렵에 우리집 형편이 요즘 어떠세요, 전화기를 바꿔 줄 수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아는 분께 전화에 대해 문의하니, 요즘 그런 전화를 갖고 다니는 애가 어디 있느냐고 오히려 우리 부부를 나무라신다.
애들 일수록 다양한 기능으로 모양도 예쁘고 작은 것으로 해 주어야 친구들 사이에 왕따
당하지 않는다면서 리베이트 기간이라며 카메라 폰으로 바꾸어 주었다.


입을 귀에 걸고 하루 저녁 내내 상상 못할 다양한 기능들을 습득하여 이것저것 저장하기 시작했다. 전화 신호음을 노래로 하더니, 버튼 하나 누르고 “엄마!” 하니 내 전화기로 신호가
들어온다. 또 무슨 버튼을 누르니 노래가 흘러 나오고, 뜬 영상까지 춤을 춘다.
사진을 찍은 것인 줄 알았는데 비디오 기능까지, 날아 다니는 잠자리를 보더니 호들갑을 떨며 삐록! 활짝 핀 코스모스를 보고도 삐록! 급기야는 식사 후에 입을 삐록 찍더니 입에 무엇이 묻었나, 잇사이 까지도 본다.
또 삐리리~ 울리니 열심히 엄지 손가락을 놀려댄다.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 꼭 암호를 주고 받듯 옆에서 보니 기분이 심히 나빴다.

어쩌랴! 세대 차이로 인정 할 수 밖에.
그런데,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해도 금방금방 통화가 잘 되지 않아 걱정이 되고 궁금증에 짜증만 더해 갔는데, 딸 아이와는 통화가 되었는지 안부를 전하며, 점 메일을 사용하라나?
그래, 세대에 순응하자! 사용방법을 자세히 종이에 적어 순서를 익힌다. 실험대상으로 가장 가까운 딸에게 보내며 확인한다.
수신되어 삐리리~ “I did it.”
남편에게 보내본다. 물론 무반응, 받고 열 줄을 모르니까.
아들에게 보낸다. “My sun, son, I luv u” 삐리리~ “Mom, U R so cool!” 삐리리~

이 가을, 나는 세대에 업그레이드 된 엄지족으로 태어나고 싶어 오늘도 순서지를 보며
열심히 눌러댄다. “Call me son.” 삐리리~
딸에게 온 아들의 점 메일, “엄마 너무 자주하지 말라고 해줘” 삐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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