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엄마의 공부

2005-09-2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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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래현(성악가)

꿈 많고 발랄하던 여중,고시절에 그래도 교내에서는 꽤 이름을 날렸다.
첫째로는 허리가 제일 가녀린 여고생으로, 둘째는 피아노도 잘치고 노래도 잘한다고, 교내 행사때마다 불려 다녔다. 선,후배들이나 친구들의 부러움과 사랑을 받기도 했으나, 때로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교장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학교 생활을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모범생의 기준을 정하셨다. 자격 요건중에서 첫번째는 신실한 기독교인 이어야 했다. 나의 모교는 크리스챤 학교였다. 두번째는 피아노를 잘 쳐야 했다.
나의 은사님은 고아들을 입양하셔서 피아노를 가르키시고 음대로 진학을 시키셨다. 셋째는 우수한 학교 성적과 교내 활동에 활발한 학생을 원하셨다.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고, 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를 벌었다. 방과후 선생님들을 도와드리고 학교에 남아 피아노 연습에 전력을 다했다. 피아노 렛슨도 시작하여 학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 나의 삶 가운데 행복한 것은, 학교 생활과 교회 생활, 그리고 음악 이었다.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때 음악 선생님의 반주를 맡은것이 중학교 1 학년 이었다. 추운 새벽에 시린 손을 부비벼 반주 했던, Mozart 의 “알렐루야”와 A.H. Malotte 의 “주기도문” 은 지금도 내겐 각별한 곡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피아노 렛슨을 받는것은 사치였을 정도였다.
어머니 혼자서 삼남매 교육시키기도 버거우셨는데, 나는 그 피아노 만 배우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었던 내 어린 시절 이었다. 그때의 끈기와 집요한 간청과 소원 때문에 지금까지 음악과의 인연은 계속 되고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희생과 후원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셨다.


지금 이나이에도 석사 과정을 한다고 일주일에 이틀씩 학교에 나간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일년은 마쳤고, 이제 두 학기만 잘 마치면 졸업을 한다.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 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무엇을 공부 하는가?
왜 공부 하는가?...하는 이 질문과 대답을 내 자신에게 한다. 내가 안다고 하는것이 무색 하리만큼 담당 교수 에게 야단 맞을때는 눈물이 났었다. 나의 자존심과 무력함도 내려 놓았다. 배울때는 겸손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학교에서 많지는 않지만 장학금도 받았다. 나의 자녀들에게 자랑했다. 그들에게 용기와 도전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박수를 보내며 계속 공부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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