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어떤 소망

2005-09-2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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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문 자<자영업>

15년 전의 대화 한 토막.
임문자씨 아직도 좋은 글 많이 쓰시지요? 시인의 말.
아니요. 전혀..... 나의 대답.
대학 시절에 반짝이는 시를 참 많이 쓰셨는데, 아니 왜 그러시나요?
일상 생활에 몰두하니까 그런가봐요. 생활이란게 너무나도 산문적이잖아요.
그런 것을 그냥 쓰면 그게 소재가 되던데.... 지금쯤 참으로 특이한 글을 쓰시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미국에 계시니까 남다른 글이 나올 법도 하지요. 그러지말고 나하고 약속하나 합시다. 귀국하시면 글을 보내주신다고요. 세편 이상 꼭 보내주셔야 합니다.
나는 그냥 애매하게 웃음지었다.
지금도 어쩐지 빚진 마음이다. 시처럼 살면되지. 핑계대면서....
어느 날 의사 면허증이 있는 전업 주부와의 대화 한 토막.
공부 참 열심히 했겠네. 의사가 되려면 당연히 그랬을테지. 나의 말.
그럼요. 부모 속도 안썩이고 말도 잘 듣는 학생이었죠. 필리핀 2세 전업 주부의 대답.
지금 너의 엄마한테 물어봐. 아직도 말 잘듣는 딸인지 아닌지....
우리는 마주보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내가 한마디 덧 붙였다.
우리 딸도 변호사 자격증 가진 전업 주부지.

얼마전에 은퇴한 대법관 산드라 오코너는 우리 딸의 롤 모델이다. 과연 우리의 딸은 제일 비싼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한 후, 산드라 오코너처럼 변호사가 되었다. 그것도 펜실바니아 주와 뉴저지 주의 면허증을 동시에 거머쥐고 승승장구 하더니,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버리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언제 다시 변호사 할건데? 나의 말.
엄마는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안보이나 봐. 우리 딸의 대답.
그 행복 나도 알지. 아이들 시중드는 것 얼마나 즐거운데..... 속으로 중얼거렸다.
딸의 시 낭송회가 있을 때면, 그 곳에 온 나의 친구들을 모두 몰고가서 늘 커피를 사주시던 낭만적인 우리 아버지.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살고 있는 많은 나의 친구들을 아버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다. 아마도 그중에 당신의 딸도 끼어있게 되리라고 믿으셨을 것이다. 92세가 되신 나의 아버지. 한번도 말씀하시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안다. 그것은 나의 친구들이 나에게 바랐던 소망이기도 하고, 우리 딸에 대한 나의 소망이기도 하니까.
소슬 바람처럼, 한가닥 구름처럼, 어떤 소망이 허공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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