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네요

2005-08-3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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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연<한국학교 교사>

연일 나오는 신문 광고를 보며, 나는 요즘 사뭇 행복하다.
7080, 무슨 대단한 의미냐고 하겠지만,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고, 아직도 그 시절에 젖곤 하며, 엄마도 너희들과 똑같이 열광했던 시절이 이었다는 것을 생소해 하고 낯설어 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좋다.

 대중화된 남진이냐, 감미로운 김 세환 이냐, 개성 있는 송 창식 이냐 한 바탕 난리 속을 헤치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부임한 학교에서는 대중 음악과는 거리가 먼 고상하고 우아하게 클래식 음악이나, 잘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팝송이나 샹송을 즐겨 듣고 혹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으면 <오~ 오 내사랑 목련화야~> 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을 부르는 교사로서 폼 잡으며 입시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학생들을 들 볶았다.
 전 영록 팬과 김 세환 팬들의 패싸움을 진정 시키기 위해 오리 걸음을 걷게 하고, 창 밖의 여자가 기승을 부릴 때 조 용필 책 받침을 무조건 압수하고, 압수당한 학생들의 보복(?)이 두려워 주변 정리를 세밀하게 하고 시내 활보도 자제하던 어느 해, 교내 체육 대회 때 등장한 신선한 응원가!
 아니 벌써? 시합 끝났나~, 정말 농구 이길 줄 몰랐어 ~…
구름 모자 쓴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반 앞에서 응원하며 흥을 돋우고…
버스를 타도, 전파사 앞을 지나도 늘 흘러 나오던 개구장~이!
선생님! 왠 만하면 레파토리 좀 바꾸시죠. 여기 음정 부담 없는 노래 있어요 하며 선별하여 녹음 해다 준 카셋 테이프에는 반 이상이 산울림 노래였다.
우아한 교사가 이런 대중가요를 들을 순 없지. 퇴근하면 누구에게 들릴까 이어폰을 끼고 들으며 낮은 목소리라도 충분히 따라 부를 수 있어 부담 없이 따라 부르며, 가사를 받아 적는다.
부를수록 내가 시인이 된 느낌이 들고 동화 작가가 된 느낌이 들며 노래가 나를 그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혼자 갈 용기 없어 반 학생들 선동하여 단팥빵을 사 먹여 가며 간 시민회관 공연…

신문 광고 문구에 적힌 노래 제목들을 읽어 보며, 그 시절 우리 반 학생들, 발 야구 못한다고 구박하던 교장 선생님, 고상하고 우아한 선생님이 이어폰 끼고 몰래 노래 듣던 모습, 나는 괜찮으니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 하며 그 좋아하던 단팥빵을 한 입도 못 먹었던 일….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아 놓고 다시 한번 돌아 오라 해도 못 올 아름다운 추억들.
또 누가 알았으랴, 이 미국 땅에서 같은 경쟁 업종의 비지네스를 셋 중의 한 분과 하게 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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