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생각하며/ 문학의 숲

2005-08-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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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란<주부>

   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친정 집 책꽂이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내가 결혼 전에 읽었던 문학 책들과 철학 서적, 시집들, 모아 놓은 음반들을 보면서, 잠시 감회에 젖은 적이 있었다. 한참만에 아주 오래 전의 옛날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 빛 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면 내가 예전에는 이렇게 생겼었나 생소해하면서도 친근함을 갖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미국에 올때 짐이 될까봐 고스란히 두고 온, 지금은 내용도 아예 읽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책들과 음반들을 훑어보며, 낯설고도 외롭고 바쁜 이곳 생활 속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마저 잊은 채, 그 동안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왜 그리 여유 없이 바둥거리고 살았었나 하는 후회로움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감상에 젖었었다.
   지난 달, 우연히 들른 산호세의 한국 책방에서, 은사이신 장 영희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반가운 마음에 들고 와서, 읽어보았던 시간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많은 문학 작품들을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고전 문학 세계를 작가 특유의 세상과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가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 보고 느낀 현실세계의 아름다움과 누추함을 비교, 분석하여, 새롭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그 글들을 통해서, 오래 전 학창시절에 거의 읽은 책들이지만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고, 그 어린 나이에는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삶의 진실을 나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아서 밀러의 유명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평범한 소시민인 아버지가 자신의 꿈을 가슴속 밑바닥에 깊이 숨기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 무거운 가방에 들고 세상에 나가서 팔았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아버지 그 자신이었다는 것도 나는 이제야 다시 기억해 냈었던 것이다.
   장애자라는 역경을 침묵으로 딛고 일어서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주옥같은 글을 쓰고, 이제는 병마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자신보다 조금 더 낮고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과 그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망을 먼저 들어 달라고 하느님께 기원하며, 우리 나라 단 한 명의 불치병인 온몸이 굳어 가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박 진석님의 ‘소망’이라는 이 시로 끝을 맺는다.

새벽, 겨우 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 땀 훔치며
퍼져 버린 라면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느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맨 채, 목발을 짚고 힘겹게 몇 층의 계단을 걸어 올라온 강의실에서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면서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고 문학의 힘을 어린 제자들에게 늘 말씀하던 스승은 자신보다 더 힘겨운 처지의 사람들을 위로하며, 삶의 고통 속에서도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서 나아가라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문학의 숲을 천천히 거닐어 나오며, 고난도 또 다른 축복이라 여기고 감사할수 있을때 참된 마음의 행복을 얻을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이 부끄러워 지지만, 다시 기운을 내서 내일의 일상을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맑아지는게,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 쌓인 깊은 숲 속에서 신선한 공기와 푸르른 바람을 쐬고 나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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