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국무성 통역관으로 수년간 재직한 김동현 씨가 한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곧 은퇴한다고 밝혔다. 국무성에서 ‘Tong Kim’으로 불렸던 김 씨는 고대 영문과 출신으로 역대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미국 고위 관리들의 한미회담의 통역을 도맡았던 분이다. 미국의 레이건, 클린턴, 부시 부자 대통령과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 등 여러 정상회담에도 직접 참여하였다. 클린턴 시절 메들리 국무장관의 북한방문 시에는 그녀와 동행, 평양에서 김정일과의 회담 때도 통역을 하였다. 외교적 언어표현 능력이 출중하여 오랜 세월 통역이라는 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동현씨는 아직 외교관례상 정상회담의 뒷얘기들을 모두 공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부나마 공개한다면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고, 만약 좀 더 자세히 회고록으로 엮으면 미국인들은 물론이요, 이곳 재미 동포들을 포함해서 한국인에게 큰 반응과 흥미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는 은퇴발표 인터뷰에서 언어 전달방식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This man’이라고 한 것을 ‘이 사람’과 같은 자칫 비하되는 표현으로 나타낼 수도 있었지만 김 씨는 ‘이분께서는’이라고 통역했다. 또 ‘easy man to talk to’를 ‘말하기 쉬운 상대’ 쯤으로 통역했더라면 큰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그는 ‘대화가 편한 분’이라고 통역하였다. 직설적 표현을 좋아하는 부시의 진심을 읽고, 이 진심을 재치 있게 한국말로 표현한 것이다. 한국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아직 그런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다.
훌륭한 통역의 필수 조건 중 하나는 양국관계와 양국언어, 양국문화에 대한 해박한 식견이다. 특히 한국말에는 높임말, 간접 높임말, 객체 높임말, 낮춤말 등의 구분이 엄격하여 우리 한국인 사이에도 여간 조심되는 것이 아니어서,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례를 범하게 된다. 국가간 외교적 통역에 있어서는 품위를 유지하면서 그 나라 관행에 맞도록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일부 사례에서 보듯이 김 씨는 양국 언어 표현감각과 재치가 놀라운 분이다.
그의 수년간의 통역생활 중에서 한미 역대 정상들의 직접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나 회담 뒷얘기, 대화의 자세, 설득능력, 실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색다른 에피소드도 있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들이 듣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김 씨의 관록과 식견은 대단하다 할 것이다. 통역생활 경력이 기록된 ‘김동현 회고록’을 발간하기를 기대해본다. 그 회고록에서 한미 정상들의 ‘인간적인 내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며, 긴박했던 양국관계라든가 그들 간의 ‘뒷얘기’ 혹은 ‘비화’의 일부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윤전 볼티모어,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