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옷장 속의 풍경

2005-08-0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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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주부>

옷장 속에 그득하게 걸려있는 옷들이지만 막상 외출에 맞추어 입고 나가려면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망설여지곤 한다.
그러다가 일 년에 두서너 번 도네이숀 해달라는 엽서가 오면 그 입어지지 않는 옷들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막상 정리를 시작하다 보면 어떤 옷에는 담겨있는 추억 때문에 두어야겠고 또 어떤 것은 아직은 입어도 될듯하여 남겨두고, 또 다른 것은 일 다닐 때 입어야겠다고 접어두고, 그러다 보니 버릴 것이 전혀 없어 다시 걸어 두지만 작심한 마음과는 달리 다시 입는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터득한 상식이 계절에 맞추어 장만한 옷은 그 시기에 자주 입어서 본전을 빼야지 다음을 생각하고 아낀다고 걸어 두다 보면 유행에 뒤지고 그사이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못 입게 되어 옷장 속은 풍요한데 옷 궁핍을 겪는다는 사실을. 너도나도 명품타령에 나도 그 대열에 끼어보려고 백화점에라도 나가보면 화려한 색상의 세련된 디자인들이 한결같이 젊은이들을 위한 팻숀이지 나이든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되돌아 나올 적마다 자랑스러운 듯 가슴팍과 배꼽을 다 드러내며 활보하는 젊은이들에게 밀린 내 자신이 옷장 속에 걸려있는 때 지난 옷같이 칙칙한 기분이 든다.

보는 내가 낯 뜨거우리 만큼 심한 노출의 젊은이들을 보며 나도 저들 나이 때를 돌이켜보니 웃음이 절로 나며 그 기상천외한 모습들이 떠오르곤 한다.
흰 눈 쌓이고 세찬 바람 불던 60년대 겨울, 거울처럼 반들반들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를 유명 양장점에서 맞춰 입은 가볍지만 두툼한 인조 밍크코트를 무릎까지만 닿게 입고 맨다리나 다름없는 스타킹에 굽의 높이가 2승 3승하던 하이힐을 신고 곡예 하듯 빙판길을 활보하던 시절, 우리를 쳐다보는 어른들마다 혀를 차며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는데 그 위태로운 모습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유행이어서 누구 하나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도 않고 즐겨 외출하곤 했으니까 지금의 노출패션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한 시절 그들대로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지.
신문사에서 여성의 창에 기고해달라는 기자님의 전화를 받으며 그동안 내노라 하는 전문가나 지식인들, 그리고 문학에 소질이 많은 젊은이들의 좋은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왔는데 나이 많은 나의 좁은 식견은 어림도 없는 지면으로 여겼지만 오늘은 왠지 버리지 못하는 옷장 속 옷들처럼 그 옷들을 입고 지낸 아름답고도 힘겨웠던 삶의 발자취를 하나씩 들쳐보며 나름대로 생활의 활력소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나를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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