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살구 익을 무렵

2005-07-0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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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드디어 여름이 무르익는 7월. 살구가 훔치기 좋을 만큼 익는 때가 되었다. 작가 윌리엄 사로얀이 프레즈노 농촌 지방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작품에서 한 표현이다. 모험심과 장난기 넘치는 어린 시절로 단박 돌아가게 하는 그 한마디! 그 멋진 표현을 읽고 나도 살구 훔쳐먹을 이웃 농장이 하나 있었으면 꿈꾼지도 어언 3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 타오르는 칠월의 태양 아래 달구어지는 여름의 숨결을 이보다 더 낭만적으로 그린 걸 나는 본 적이 없다...

이웃 농장은 없으니 내가 오래 전 심은 살구가 이제 우리집 마당에 무르익어간다. 나는 이맘때면 살구나무를 살펴보며 이따금 한구석에 엉뚱한 꿍심으로 서운해 한다. 이 꿀맛같은 우리 살구를 훔쳐먹을 개구장이 머스마들 너댓 우리 동네에 없을까하고... 그애들이 맨발로 살금살금 다가오면 나는 더 빨리 더 살금살금 도망 가줄텐데... 그러나 아뿔싸! 무르익어가는 살구의 향그러운 냄새에 꼬여 몰려드는 도둑은 들새들과 다람쥐들밖에 없다.


이 고얀 도둑들은 그 달콤새콤 자두가 한 나무 가득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살구부터 먼저 먹어치우려한다. 그러다보니 해마다 이맘 때면 우리 집엔 살구전쟁이 난다. 먼저 한개라도 더 잘 익은 살구를 차지하려는 이 살구 도둑들과 우리 식구들의 줄다리기다. 매일 같이 나가 살펴보고 내일쯤엔 대충 익겠구나 아니면 모레... 하고 때맞춰 가보면 단 한개도 남지 않고 다 뺐겨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어느 해 이 살구로 내가 빚은 술을 한국서 오신 오빠가 맛보시고 너무 훌륭해 신선주라 부르던 일 등 우리집 살구나무엔 나의 애착만큼이나 사연이 많다. 올해는 이 살구나무에 색다른 추억이 또하나 더 메달렸다. 홍조를 띈 샛파란 살구들이 데롱데롱 메달린 걸 잘 찍어 그 사진을 지난 달 서울의 오빠께 이멜로 보내드렸더니 한달이 지난 엊그제 문득 답장이 왔다. -그 살구 모습이 하도 시원해 컴퓨터 배경에 깔아놓고 감상했다. 오늘 너에게 편지 쓰다말고 하도 살구생각이 나 시장에 가서 청메실을 한 상자 사와서 메실주를 담았다... 너도 훗날 맛보게 해주마...

아~ 이 무정한 살구들아! 너들은 왜 내 마당에 있느냐. 우리 엄마 오빠 사는 아파트 앞마당에나 있을 것이지. 어제 전화드리니 서울의 엄마도 자두랑 살구가 잘 익느냐고 물으셨다. 네, 잘 익어가지요 대답하며 나는 목이 메었다. 잠시 둘 다 말이 없었다. 똑 같은 생각으로... 엄마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고향 떠난 사람은 살구 하나 탐스럽게 먹기도 예사롭지 않담. 해마다 그렇게 달콤하기만 하던 살구 익을 무렵의 추억이 오늘은 내 가슴을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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