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펜클럽/피난 길

2005-06-2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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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년

하룻 밤 새워 갈 수 없겠오?
날은 어둡고
어린 것들이
더 걸을 수가 없어....

방바닥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엄마는 갓난 것 업고
할아버진 봉사손(奉祀孫)을 메고
그래도 난 고무 달린 운동화 짝이라도 있어
발톱이 시커멓게 죽을 때까지
걷고 걷고 또 걷고
비실 비실
길 가 오막살이
남의 집 문턱에
주저앉을 때까지.

아, 오십년 하고도 오년 전,
이제 할아버지, 엄마, 동생들 다 떠나가 버리고
홀로 남은 나에겐 기억의 상흔만이 무성하다.

반세기를 지나도 평화는 오지 않고
전쟁의 대결은 끝날 줄 모른다.
이 무슨 역사의 괴팍함인가?

아직도 그치지 않는 우리의 피난 길
언제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역사여, 마음을 푸시고
진정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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