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평양을 다녀와서

2005-06-2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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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애<나라사랑 어머니회 총본부 사무총장>


2003년 10월 말경 나는 나라사랑 어머니회로 5박 6일간 북한을 다녀오게 되었다. 북한을 다녀 오라는 본부의 지시가 있었을때 나는 될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다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2003년 홍콩 지부와 서울지부는 북한 어린이 돕기 자전거 싸이클링을 하여 $100.000을 모금하여 어린이 내복, 담요, 양말, 라면 , 등을 준비하고 우리의 자매 단체인 서울의 “사랑의 친구들” 은 의약품 $1,500,000 상당을 기증받아 북한을 함께 다녀 오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가게 되었는데 비행기 트랩를 오르면서 나는 감회가 깊었으며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베이징에서 100여명정도 타는 작은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걸려 평양 공항에 오후 4시쯤 도착 하였는데, 민족 화해협의회에서 3사람의 안내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 일행은 밴으로 평양 거리의 가로수인 은행 나무가 노랗게 단풍진 거리를 지나 고려 호텔에 도착하였다. 그때 마침 “World Vision” 홍보에 봉사하는 탈렌트 박상원을 로비에서 만나 반가워하며 함께 사진 촬영을 하였다. 도착 당일 저녁은 민족화해 협의회 부회장 허혁필씨가 우리를 만찬으로 대접해 주었고 안내원들에게 “손님 원하는대로 해 보라, 그러나 질서대로 하라”는 지시를 한다는걸 밝혔을때 우리의 일정은 유연성이 없다는걸 예상했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안내원들을 따라 정해진 코스인 김일성 생가 만경대 고향 집, 주체사상기념탑, 묘향산에 있는 국제 친선 전시관, 평양 산원(산부인과), 김정숙 탁아소, 창광 유치원, 지하철, 어린이 영양 관리소, 평양 교예극장 등을 관광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방에 있는 탁아소를 둘러 보기를 원했으나 허락지를 않아 끝내 가보지를 못했다. 남.북한의 어휘도 너무 틀려 처음에는 차림표(메뉴)를 보는 순간 우리들은 너무 웃었다. 호텔밑에 있는 미용실겸 안마실 차림표에는 머리 칼치기(이발), 머리빨기(머리감아줌), 머리형틀잡기(파마) , 비행기 안에서는 걸상띠, 변기세탁, 위생실 등 남. 북한의 큰 차이를 볼수 있었다. 북한은 전기가 부족하여 해만지면 길거리는 깜깜했고, 일반인들의 교통 수단은 지하철이었다. 하루는 나갔다 돌아오니 내방에 라지에터가 있었는데 청소부 아주머니가 매일 아침 팁 1불을 놓고 나가는 나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갔다 놓은것이었다. 히터가 있지만 켜 놔도 전기부족으로 온방이 안되었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 마음은 다 같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5박 6일을 안내원들과 지내다 보니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노래방에 가서 “아침이슬”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헤어질때는 ” 다시 만납시다” 를 불렀는데 우리들의 심정을 잘 표현해 주는듯 했다. 11월 1일, 평양과 북경 두쪽 다 안개가 진하게 끼여 고려 항공의 9시 비행기는 10시 15분에 이륙했을때, 언제 다시올지 기얄 할수 없는 곳을 뒤로 하는 맘을 안고 하나님께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을 기도 드렸다. 유일하게 북한에서 “강신범” 화가의 민속 그림 한점을 사가지고 왔는데 이 그림을 볼때마다 지금도 그때의 생각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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