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불어 사는 세상/어느날의 대화

2005-06-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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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여보 제발 잔소리를 좀 그만하세요. 그 애도 이제 이십대 중반이라구요. ‘틴 에이저’가 아니에요’ ‘이십대고 삼십대고 상관없어. 내 집에서 사는 한 우리 집 ‘룰’을 따라야지. 저 혼자 나가 살면 몰라도 이 집에 있는 한 할 얘기는 해야지 요즘 젊은 애들 거의 다 도깨비들이라고요. 밤늦게 들어오는 게 그 애 뿐인줄 아세요? 남의 집 애들이 다 도깨비처럼 밤늦게 돌아다닌다구 우리도 그냥 내버려두자 이거야? 그러다 일 저지르면 어쩔려구?
대학 졸업하도록 속 썩인 일도 없고 좋은 직장에서 성실히 일해 상관한테도 인정받고 그런 아이가 일은 무슨 일을 저지른다고? 하여튼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 별로 달가운 일 아니라구 이제 그만 하시구려, 자꾸 그러시면 애들도 늙은이 잔소리로 치부하고 그냥 한 귀로 흘려버릴 거라구요
그런데 임자는 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걸고 넘어지는거요? 걸고 넘어지긴 뭘 걸고 넘어진다고 그러세요? 그냥 잔소리 좀 그만 하시라는 거지 할소리 하는게 모두 잔소리란 말이요? 아유 이러다 싸움 나겠어요. 어서 소일거리를 찾으시던가 내가 할 일이 없어 잔소리만 늘었단 말이요? 은퇴 후 여간 말씀이 많아지신게 아니에요 사돈 남말하시네, 그러는 할망구는 왜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가 그리 많소? 저도 할 얘기 하는거에요. 잔소리가 아니라구요 예를 들자면? 예들고 자실거도 없어요. 식사때마다 얼굴에 밥알 붙은 것도 모르시고 국물이 잎 옆으로 줄줄 흘러도 모르시고 외출 때 벨트와 구두색깔도 안 맞고 후줄근한 옷만 편하다고 외출복으로 걸치질 않나?

어디 한 두가지라야 입다물고 있죠? 아차 내가 나이먹어 그러는 걸 아예 주접들은 늙은이 취급을 하는 거요? 그러길래 나이 들수록 깨끗하게 차리고 말수도 줄이라지 않아요 그러는 당신은 왜 맨날 집안에서 방귀를 방방뀌고 돌아다니시오? 누가 뀌고 싶어서 뀌나요? 나이들어 헐거워지면 다 그런거에요. 참, 나중엔 별 얘기가 다 나오네 그러고 보니 얘기가 좀 치사해졌다. 그렇지? 그게 다 막내한테 잔소리하시다 시작된 거에요 그애도 집에서 같이 살날 얼마 안남았어요
왜? 나가겠데? 그럼 언젠가는 나가지 언제까지 잔소리 듣고 싶어 여기서 살겠어요? 나가긴 어딜 나가? 군소리말고 돈 모으라고해. 왜 빈방 놔두고 나가서 비싼 셋방살이 할려구? 어서 돈 모아 제집 장만 할 때 까지 꿈도 꾸지 말라구 그래. 나가긴 어딜 나가? 그러니까 잔소리 좀 그만 하시라는 거에요. 요즘 아이들 속들이 꽉차서 허튼 짓들 하시지 않으니 제발 발뻗고 자게 내버려 두세요
그렇게도 귀에 거슬렸다 말이요? 내 듣기에도 그리 거북하니 젊은애들 듣기엔 어떻겠어요? 당신도 그 나이때 아버님 말씀이 항상 귀에 쏘옥 들어 옵디까? 그말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난 그 당시 아버님은 옛날 분이시니 그러시려니 했는데 이제는 저놈들이 날 그렇게 보는 지도 모르겠구만 이미 당신은 애들한테는 옛날 분으로 도장이 꽉 찍히셨다구요. 그러니 더 이상 골동품 취급받기 싫으시면 웬만한 건 오르는 척 넘기세요. 그러면 애들이 다시 존경할겁니다 아니, 그렇게 똑똑한 여자가 어쩌다 나한테 시집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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