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경에세이/중국을 찾아서

2005-05-2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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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북경 입경’

평생 남쪽 사람으로 살아온 내게 북녘은 원수의 땅이었다. 철과 죽의 장막에 둘러 쌓인 공산분자들의 아성(牙城)이었다. 문화대혁명의 광기로 숙청의 피를 온 대륙에 뿌리던 때가 불과 한 세대 전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북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것도 유람객이 되어 적의 심장 북경 땅을 향해 진입하고 있다.


탑승한 에어 차이나 보잉기 양 날개에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선명하다.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하다. 독립 운동과 육이오 때 산화한 수십만 애국 선열들의 혼이 아직도 떠도는 만주벌과 북녘땅. 그 한 서린 산하를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유유히 날고 있다. 이 역사의 반전(反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이 공산분자들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적국기를 타고 한 마리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나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

옛 중국의 모습은 중학교 때 영화「북경의 55일」에서 처음 보았다. 노후하고 부패하고 음험한 대국이었다. 1900년경 청나라가 열강에 찢기고 있을 때 일어났던 중국 의화단 사건이 배경이었다. 미국 조차지 자국민을 지키던 해병장교 챨튼 헤스턴, 외교관으로 분한 데이빗 니븐의 노련한 연기. 그리고 불타는 자금성을 바라보던 여주인공 에바 가드너의 연민 어린 눈매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21세기 자금성(紫金城)은 거대한 중국의 자존심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천안문은 모택동의 대형초상을 넓은 양미간에 반듯이 걸고 초강대국으로 향하는 현대 중국의 상징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너머 자금성 궁궐은 2500년 중국 문화의 진원지로서의 긍지를 용포(龍袍)처럼 두른 채 깊숙이 좌정하고 있다. 우리는 인파가 넘실대는 천안문 광장에 서서 용솟음치는 새 중국의 잠재력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지대물박(地代物博) - 거대한 땅과 풍부한 물자, 그리고 무한정한 인력과 새 기술의 도입으로 나날이 성장해 가는 중국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중화(中華)사상의 자존심을 이해하십니까?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유페이진(侑 貞)양은 샹하이 대학을 나온 27살 재원이다. 유창한 영어와 해박한 역사지식, 자연스럽게 외국사람들을 리드하는 매너와 유머감각, 무엇보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철저히 여행객들의 편이를 지키려는 장인정신이 우리 일행들을 놀라게 한다. 미래 중국의 실질적인 잠재력은 경제발전 못지 않게 이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젊고 유능한 고급 인력에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또박또박 설명하였다. 세계 4대 문명 중 인도나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 문명은 오늘날 그 명맥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만은 고대문화가 지금까지 잘 살아남아 숨쉬고 있지요. 서양 제국들은 식민시대 이후 자신들의 가치관을 전 세계에 일방적으로 강요해 왔습니다. 후진국들은 아무 반발 없이 이 서구의 가치를 무분별하게 수용해 왔지요. 그러나 중국은 다릅니다. 그런 문화에 대해 대항할 의지를 가진 마지막 남은 문화적 보루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어요.

예부터 중국은 누구든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면 우방으로 포용했다. 그러나 배척하면 모두 오랑캐로 몰았다. 이제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중국 문화권 안에 있었던 다른 민족의 역사를 모조리 자신의 역사 안으로 끌어넣으려는 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듯 보인다. 본격적인 중화사상의 확장 -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고구려 역사 왜곡의 저의도 염려스럽다. 점점 독선적이며 국수주의화 되어 가는 그들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

도착 때 맑았던 북경의 하늘이 저녁 무렵 점점 잿빛으로 변한다. 나만의 착시(錯視)일까? 첫 북경에서의 밤에 뒤척이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한다. 심야 북경방송은 6.25 전쟁영웅이자 유엔 대사였던 차오관화의 일대기를 방영하고 있었다. 과연 미래의 중국은 내게 적인가 우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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