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추억의 우체통

2005-05-13 (금) 12:00:00
크게 작게
박 정 현

요즘같이 하늘 푸르고 따스한 산들바람 살랑거리는 봄날에 나서면 나는 자주 아! 이 나이가 참 좋다!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청춘은 아름답다하지만 그 청춘이 아스라한 추억 뒷전으로 물러난 중년의 나이가 왜 좋을까? 그건 내게 추억의 우체통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내 추억의 우체통은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나를 불쑥불쑥 행복하게 한다. 아무리 평범한 것 하나라도 내 추억의 우체통에서 나오면 예사롭지 않다. 가령 어제 오후 외출했을 때 나를 반겨준 하늘은 어쩜 그리 부드러운 푸른 빛에, 끝없이 둥둥 떠가는 하얀 뭉게구름은 내 추억의 우체통에서 도화지 옆에 끼고 크레용상자들고 그림 그린답시고 산천을 헤메던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어느 날을 내게 배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나는 잠자리채 들고 잠자리 잡으러 동네 아이들과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언덕을 밭을 헤메었다. 가끔 익어가는 들보리나 밀을 만나면 꺾어와서 깡통에 불을 지펴서 구워먹는다고 난리치다가 혼이 나도 달콤하기만 한 그 추억 그 시절… 이런 것을 난 내맘대로 꺼냈다 도로 넣었다 한다.

내 추억의 우체통에는 시간이 순서도 없이 종횡무진하다. 엊그제 온 봄비를 맞았을 때나, 얼마전 라일락 향기 맡으면… 하고 시작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는 나는 라일락 필 무렵이면 봄비 부슬부슬 흩날리는 학교 교정을 혼자 오르락내리락 하는 꿈많은 대학교 초년생이 되었다. 지금의 그 향긋하고 달콤한 기분은 그당시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할만큼 아름다웠다.

우체통이란 그 말하나로도 낭만이 가득하다. 푸른 우체통, 빨간 우체통, 우정의 우체통, 부엉이 우체통… 오래 전 우리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참새 우체통이라 이름지은 조그만 장난감 우체통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이쁜 꽃그림 등을 그린 쪽지를 넣고는 그 우체통을 집안에 여기저기 옮겨 놓곤 했다. 아이는 그 참새 우체통이 눈에 띄면 살짝 열어보곤 어쩌다 엄마가 보내준 그림 편지 한통이 보이면 손뼉을 치며 기뻐했었지…

중년이 넘은 사람들이 에고 이 나이에… 하거나 세월의 짐에 짓눌리고 찌들어 웃음도 재치도 여유도 잊은채 허둥지둥 사는둥마는둥 사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들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다. 행복하세요. 중년은 몸도 마음도 풍요하지요. 세월이 아름답게 빚어주는 아름다운 추억이 한아름 - 추억의 우체통을 하나 만들어서 주고 받고 해보세요 라고…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