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어느 캠핑 이야기

2005-04-2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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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란<주부>

재작년 9월초니까, 아마도 노동절 연휴 때였던 것 같다. 우리는 캠핑 장비를 차에 싣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는데, 일단 가 봐서 캠핑할 자리가 없으면 준비해 간 저녁이나 먹고, 바로 집으로 내려오자는 생각으로, 한번도 가지 않았던 북쪽 소노마 해안 쪽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캠핑 장소를 찾으려고 1번 도로를 따라서 올라갔는데, 바닷가 절벽 위에 캠핑 장이 하나 있었고, 아주 운 좋게도 그 날, 바닷가 바로 가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절벽 아래 바다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 잠시 바닷물에서 아이들과 놀고 나서, 불을 피워 일찍 저녁을 갈비 바베큐를 해 먹고, 모닥불을 활활 피워 놓은 후, 캠핑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노을로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태평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았는데, 그 날 바라보았던 그 노을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모닥불에 머쉬멜로우를 구워 먹었고, 나는 그날 너무 정신없이 떠나느라, 깜박 잊고 온 고구마를 생각하면서 내내 가슴을 쳐야 했다.

그런데, 밤이 으슥해지고 사방이 고요한데도, 우리 옆에 LA에서 왔다는 한국 사람의 텐트에서는 새벽까지 계속 어쩌면 이렇게 맛있냐 는 감탄의 탄성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소리에 식탐이 많은 남편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밤 참으로 라면을 두개 끓여 먹고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후레쉬를 들고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그들은 스쿠버 다이버 장비를 갖추더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는, 떼 지어 바닷물로 뛰어 드는 것이었고, 그제야, 우리는 그들이 지난밤에 맛있다고 감탄했던 음식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 스쿠버 다이빙해서 잡아 온 싱싱한 생선회와 허니듀 멜론 만한 아주 커다란 전복이었다.

나와 남편은 그렇게 큰 전복을 평생 본 적이 없었기에 그게 무언지도 몰랐는데, 해산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바다에서 갓 따온 전복 주위를 배회하다가 결국 어떤 미국 사람한테 기념으로 커다란 전복 껍질을 하나 얻었고, 이사할 때도 버리질 못하고, 지금도 뒷마당에 고이 모셔놨다.
그리고, 남편은 바다로 들어갔을 때 전복을 잘 따기 위하여, 급기야 지난여름 한국에 갔을 때 라식 수술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이 빠지는 시기를 잘 맞추면 그리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전복을 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복 따기 동호회 모임에 끼어서 같이 갈 계획을 세워 놓고, 올해는 기필코 태평양에서 큰 전복을 따고야 말겠다며 굳은 의지를 불사르고 야단이다.
올해는 남편이 따온 전복 회를 먹을 수 있을까? 꼭 전복을 못 따더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싸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눈에 푸른 바다를 가득 담고, 모닥불 앞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만으로도 캠핑의 즐거움은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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