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아줌마 치매
2004-12-23 (목) 12:00:00
최형란<주부>
요즘 나의 기억력은 가끔씩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는 치매수준을 넘어서, 기억 상실증 증세 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단 적인 예로, 올 여름한국방문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내 집 부엌에 섰는데 도무지 조미료와 음식 할 재료들을 어디다 두었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더욱 내가 놀란 것은 스파게티를 해먹으려고 스파게티를 삶아야 하는데, 물이 끓었을 때 국수를 넣어야 하는 건지, 처음부터 찬물에 국수를 넣고 삶는 건지 전혀 깨끗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바로 그때, 순간 기억 상실증이라는 병을 앓는 남자가 모든 지나간 사건들을 문신 해대는 영화가 떠오르면서 구만리 같은 나의 앞날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메모를 하지만, 그런데 문제는 종 종 메모한 종이를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아줌마 치매가 결국에는 일상적인, 매일 매일 반복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바로 전까지 쓰던 행주가 사라졌기에, 어디 있나 했더니 냉장고에서 발견한 건 한 두 번이 아니고,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둔 적도 있다. 더군다나 어제는 찬장에서 빈 그릇을 꺼내는데 그릇 안에 밥이 담겨져 있고, 컵에 물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을 쳤다.
도대체, 이 정신머리를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사는 게 이렇다 보니, 방금 전에 해야할 말도 그 순간을 놓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예전만 해도 남편의 잘못을 사사건건 다 기억해서 잡았는데 이제는 옛 잘못만 기억이 나고 좀 전에 한 잘못은 기억이 안 나니 요즘은 도저히 부부싸움도 못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아줌마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게, 집에서 노상 단순 반복되는 일만 되풀이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한정돼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 집에 갇혀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그런 삶이기 때문에 머리도 녹이 쓰는 모양이다.
이런 치매를 막으려면, 고스톱이나 앞에 가는 차의 번호 판이라도 외우라는데, 고스톱 계산 방법도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고, 요즘은 차라리 약을 먹어볼까 생각중이다. 은행잎 추출물이 들어있는 약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로 알려진 이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그 병의 가장 슬픈 점은, 바로 추억을 잃은 것이 아닐까 싶다.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온 가족도 못 알아보고, 모든 사람들이 낯선 타인으로 보이고, 지금 살고 있는 정든 집이 낯선 집으로 보일 때의 그 두려움... 행복했던 시간들과 아름다웠던 추억들도 깨끗이 사라져 버릴 때의 그 허무함. 그 두려움은 얼마나 막막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