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왜 사는가
2004-12-17 (금) 12:00:00
조희진<주부>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주로 산 속에 자리잡은 절에 많이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한국도 시내에 절을 두기도 하고 특히 미국에서는 서양식 주택에 그대로 사찰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니 그때에 운치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산사 는 모두 자연의 한 부분으로 아름다웠는데, 대웅전에 울긋불긋 칠해진 단청이나, 신중단에 그려져 있는 무서운 얼굴의 그림들은 미국의 할로윈의 의미처럼 나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장엄이라고 들어서 한편 무서우면서도 믿음직했었다.
때때로 절에서 밤을 지나게되면, 간간이 들리는 바람소리 외에는 너무 고요하고 적막해서 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고 어두운 절 마당에 나가서면 폐부까지 스며드는 산 냄새와 별 그림자에 취해 나도 그 어둠 속에 팔 벌린 한 그루 나무였다.
가만가만 흔들리는 풍경소리에 잠이 들면, 어느 듯 스님들의 새벽예불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오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잠시 쉬게 한다는 종 소리가 작은 울림에서 큰 울림으로 다시 큰 울림에서 작은 울림으로 잦아드는 것이 옅은 꿈결에 좋았었다.
미국 예일대학의 수재가 한국불교에 심취하여 십여년 수행 끝에 L.A.근교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에 한국식 절을 십여년동안 지으면서 이십년 수행기 [왜 사는가] 를 한국말로 써냈다. [빛 과 진리]가 슬로건이라는 예일대학에서 아무런 빛도 진리도 찾지 못하고 정신의 방황을 거듭하다가 [선 불교]를 만나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시작했는데, 이분은 거지반의 남한 일대를 지도만 가지고 발로 누비는 만행을 했다. 더울 때는 한적한 개울가에서 옷을 빨아서 입고 걸으면 그대로 말라지기도 하고, 어떤 절 에서는 심한 노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얼마간 쉬기도 하면서, 태풍에 불어난 계곡의 급류에 위협을 받으며 걷고 또 걸었다고한다. [오직 걸을뿐] 의 마음으로.
자신의 유산을 털어 십년 동안 그 큰 절을 지으면서, 물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스스로 목수, 전공, 배관공, 혹은 중장비 기술자가 되어 때로는 크게 다치기도 하면서, 누군가 [언제 완공 됩니까?] 물으면 대답은 [오직 할뿐]이었다.
피어나는 젊음을, 번뜩이는 수재의 기량을, 화산 같은 정열을 고스란히 한곳에 바칠수 있게 한 그 힘은 무엇일까?
Benjamin Franklin 은 [인생은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문제를 잘 푸느냐?가 문제이다]라고 손에 잡힐듯 실질적인 말을 했는데, [자신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외부의 세계를 빌려보는 것이 만행]이라고 하는 그분은 [왜 사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모를 뿐]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 온 마음을 다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