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으로 들어가기 전 예정에 없던 다카 유대인 수용소를 둘러 볼 기회가 생겼다. 널따란 시골 학교 운동장처럼 잘 다듬어진 울안에 군대 막사 같은 건물이 자리 잡았던 흔적이 줄줄이 있는데 그 중 한 동만 실물이 보존돼 있다.
옛날 논산 훈련소의 군대 막사처럼 된 목조건물이다. 2층 나무침대, 공동변소, 취사장, 목욕탕, 그리고 문 하나를 지나면 시체를 화장하는 화덕이 수십개나 나란히 줄지어 있다. 수 많은 유대인을 화차로 실어 날라와 먹이고 재우고 목욕탕에 보내 독가스로 잠재우고 옆방의 화장실로 보내는 일괄공정(?)이 이루어지는 살인공장인 셈이다.
50여년전 한국에서 상영됐던 ‘나의 투쟁’이라는 나치의 기록영화를 본적이 있다. 그들이 처형직전 가스실 앞에 벗어 놓은 안경테, 신발, 피골이 상접한 나신으로 줄지어 선 남녀의 행렬과 그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옆의 기념관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손목을 레일 위에 얹어 놓고 기차가 지나가는 실험, 바닷물을 들이키게 하는 실험이 보인다. 죄 없이 희생된 그들의 영령들에 짧은 묵념을 하고 인성이 이토록 악할 수도 있구나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중세의 도시국가 로덴버그는 현재도 그 모습이 그대로 간직돼 있다. 좁은 골목과 포장 돌길 건축물이 타임머신을 태우고 중세로 안내한다. 2차 대전때 미국의 공습을 면한 고대 도시들은 모두가 관광명소인 것 같다. 독일의 독특한 건축양식은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에 가면 볼 수가 있다. 미국의 어느 지역을 가면 인상에 남는 특이한 목조건물이나 목조가옥을 보고 참 별난 모양이구나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원을 확실히 알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마인 강변의 박물관을 둘러보지 못했는데 괴테의 생가와 그의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 대전시 구 도시가 42%나 파괴되었으나 지금은 유럽에서 제일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현대와 중세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4.500리터를 저장하는 세상에서 제일 큰 술통이 있는 ‘황태자의 첫사랑’을 떠올리는 하이델베르크의 석양은 그 주황색 지붕과 함께 더욱 이국적 감상을 자아내게 한다. 그 커다란 술통 앞 나무기둥에도 ‘영남아 내가왔다’라는 한글 낙서가 희갈겨 써있었다.
한글을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돌아서니 별로 그 낙서가 내 마음을 개운치 못하게 한다. 두 시간여의 라인강 유람선 선유는 강변의 산 중턱에 자리한 고성들을 감상하기에는 너무나 편안한 자리였다.
그 영주들이나 왕들의 고성은 이제 관광객의 숙박도 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되었다.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 속 인어 상 여인을 만져보며 푸른 라인강을 내려다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