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사랑은 길들여지는 것
2004-12-02 (목) 12:00:00
최형란<주부>
제가 진짜 맛있는 커피 만들어 드릴께요.
시 아버님이나 친정 아빠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나는 아침이면 내가 즐겨 마시는
스타벅스 까페라떼를 공들여 만들어서 드렸었다. 이 커피는 다른 커피에 비해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커피 한잔 만드는게 좀 번거로운 일이다. 처음 몇 잔은 맛있다고 그러시더니, 어느 날 부터는 두분 다, 아주 오랫동안 입맛이 들린 커피가 제일 맛있다면서 그냥 맥심 커피 타 달라고 그러셨다. 나는 가끔, 사랑도 그런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길들여지는 거라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중독’ 되는 거라고, 없으면 못 견디겠고, 자꾸 머릿속에서 생각나고 아쉬운 거라고. 더 맛있고 좋은걸 주어도 몇 번에 질리고, 다시 예전 생활 속의 작고 보잘것없는 그것이 더 그리운 그런 거라고…
요즘 나는 내가 ‘밥 중독’이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한다. 황제 다이어트에 따르면 탄수화물을 처음 2주정도 완전히 끊으면, 살이 쉽게 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하루도 밥을 먹지 않으면 손을 떨고, 자꾸 신경질을 내는 것을 알기에 시작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살 때는 김치를 그리 많이 먹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방금 지어낸 따뜻한 쌀밥 한 그릇과 김치가 그렇게 땅긴다. 김치에 길들여진 이 질긴 사랑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지구 끝에서도 배추만 보면 김치를 담근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 사랑을 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둔다. 어떤 음식이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 커피는 어떻게 마시는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떤 술이나 담배를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나 음악을 좋아하는지 ...사람들은 그런 자질구레한 취향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헤어져서도 그 사람이 좋아했던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고, 그리워지고, 보고 싶고 그래서 사는게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오래 두고 길들여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별을 두렵게 한다. 세상에 널린 게
그런 물건들이기에. 사람들은 떠나도 추억 속에도 남지만, 그렇게 어떤 형태로든지 마음속에 남기에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을 떠올리며 살아간다.
이상하게 나는 중요한 건 다 까먹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런 자잘한 취향이나 쓸데없는걸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썼더라면, 벌써 떼돈을 벌었을텐데 하며 나는 안타까워하곤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기억해주면 나도 감동한다.
마른 햇오징어 나왔길래 너 줄라고 사놨다. 부쳐줄게
배추 겉절이만 담그면 왜 이리 네 생각이 나냐?
그렇게 나는 마른 오징어로 배추 겉절이의 모습으로 친정 엄마 마음에 남겨졌다.
나의 큰 동생은 신 총각김치로 작은 동생은 라면으로 내 마음속에 남겨졌듯이...
그렇게 길들여지는거, 요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