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벗고 나도 벗고
2004-10-27 (수) 12:00:00
김진태
군사정부시절,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향락사업을 부추겼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동방예의지국의 추락속도는 가히 경이적이다. 세상에 나올 때 알몸으로 나온 게 그리워서일까? 요즘은 유명연예인이건 무명이건 벗지 못해 안달이다. 언론까지 가세해서 광고해대는 꼴들은 가관이다. 예술까지 들먹인다. 체모가 보이네 마네로 무슨 척도를 제시하는 양 호들갑을 떤다. 옛날, 수염쓰담으며 점잔 떨던 선비들이 헛기침하던 시절에도 춘화는 있었으니 수컷들이 있는 한 이 사업은 영원히 존재하는가 보다.
요즘 조국에선 홍등가의 아가씨들이 생계대책도 없이 무조건 폐쇄하려는 당국에 맞서 흔연히 궐기하는 모습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여권신장에 앞서온 여성들이나 여성인권단체들이야 몸파는 여성들이 달가울리 없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뾰족한 대책을 들고 나오는 이도 없다. 기껏해야 기술교육이나 시켜서 취직시켜온게(물론 극소수이고) 고작이지만 손쉽게 적지 않은 돈을 만져본 그들에게 쥐꼬리 월급이 성에 찰리가 없다. 사회적으로 눈총받는 직업이지만 인간사회에 필요악으로 자리잡는게 인류역사와 시간을 함께 하니 그게 정부의 한시적인 단속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몸을 파는 여성들은 사회적 지탄이 되고 벗지 못해 안달난 여인들은 스타대접을 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다.
하얀 버선코만 봐도 ‘섹스어필’을 느꼈다는 옛 선비들이 요즘 세상을 본다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요절할게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일갈한 작가도 있었지만 그의 뜻은 너무 격식에만 매여서 현실을 파악 못하는 우매함을 꾸짖고 매사를 실질적으로 볼 것을 권장하는 것이었지 공자가 죽었다고 세상 만났다는 듯 너도 나도 벌거벗고 환락을 추구하라는 말은 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변명도 있겠지만 서구의 어떤 개방된 나라도 언론이 향락산업을 부추기고 선도하는 나라는 없다. 예술은 빛좋은 개살구일뿐 여자들이 옷을 벗어 재끼는 데는 밤거리 여인들에겐 꿈도 못 꿀 거금이 굴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인터넷 강국은 이러다가 사천만이 하나로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로 벗은 여자들만 들여다보는 이상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학생만 되면 누구나 술 마실 수 있고(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지) 담배도 미성년자에 한상 노출되어 있는 나라에 이제는 ‘포노그라피’의 홍수가 사정없이 몰아친다. 된놈 안된놈 모두가 작가라고 떠들어대며 여인들 나체팔아 치부하는 대열에 동참한다. 정부나 정계의 거물들 누구하나 참견하는 이가 없다. 공연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너만 공자냐’로 뭇매 맞을게 두려워 그러는지 아니면 평소에는 그렇게 말많던 이들이 이 문제만큼은 ‘침묵은 금이다’로 일관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렵던 시절, 조국에선 기름 한 방울 안나는 현실을 상기시키며 노래까지 보급시켰다. ‘상쾌한 아침이다 걸어서 가자, 너도 걷고 나도 걷고 걸어서 가자…’ 경쾌한 음악에 이상한 가사가 붙을 가 걱정된다. ‘상쾌한 아침이다 벗고서 놀자. 너도 벗고 나도 벗고 벗고서 놀자’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