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가을에 부르는 새 노래

2004-10-2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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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서예가)

한 낮의 끓는 듯한 볕을 제외하고는 아침 저녁으로 완연한 가을 날씨이다. 길가 나무들이 붉은 옷을 서서히 갈아입고,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잘 알아 들을만치 평소 때 보다 많은 말을 던지는 계절이다. 항상 모든 계절이 시작할 때마다 그 계절을 아름답게 대표하는 시어들이 줄을 잇는다. 올가을에도 많은 시인들이 벌써 노래를 시작했겠지. 보이는 모든 것 들이 견딜 수 없이 아름답고 재미가 있고 이쁘다 . 어떤 삶이 보이든지 추하다는 단어가 사라진 계절을 살고 있음이다.

아침 일찍 간단한 X-RAY를 찍으러 병원에를 갔다. 어쩌면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지 놀랐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나의 시선이 머문 곳은 나이가 80은 족히 넘어보이는 노부부였다. 잠자리 눈 같은 알이 큰 안경을 쓴 할아버지와 가랑가랑한 목에 흰 블라우스와 까망 조끼를 얌전히 입은 할머니.앉아서 무슨 말인지 작은 소리로 말하는데 할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신다. 조신하게 앉아서 말하는 태도로 보아 할아버지가 열 받을 말씀은 안하신 것 같은데..할머니는 그냥 못 들은 척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바닥을 응시한다. 할머니가 약간의 채머리를 흔드니까 귀에 달린 귀걸이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마치 그 순간에 무안함과 작은 아픔으로 흔들거리는 할머니의 마음 같다. 아니면 저 나이 되도록 평생 함께 살아오면서 많이도 반복 되어온 능숙한 체념의 너그러움일까?…

다들 크고 작은 아픔들을 삭히는 혼자만의 방법을 알아내면서 덮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겠지..아픈 구석 때문에 인생이 더욱 아름다와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픔까지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이 더욱 아름다운 건가?… 아뭏든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이다. 왜냐면 눈만 잘 뜨면 사랑과 감사에 머리를 감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안타깝게도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새롭게 되는 방법을 모르고 산다. 새 옷을 사는 심리도 없어서라기 보다 새 옷을 입음으로서 자기의 새로움을 느끼기 위함이다.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끝도 없고 채울 길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에 새 옷을 입히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새로운 것이다. 누구든지 시인이 되는 이 아름다운 가을엔 새 마음으로 부터 담기는 새로운 시각으로 넓은 가을 들판을 바라보자. 그러면 들판 가운데에 섰는 가을의 풍요를 담은 넉넉한 내가 보일 것이다. 가을 들녘의 살찐 바람이 나를 휘감아 선 채로 가을 하늘이 왜 높고 푸른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삶의 새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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