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우주의 지혜가 담긴 천자

2004-10-1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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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신<화가>

누구나 한번쯤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은 계절 가을과 함께 책에서 보았던 감명 깊은 구절을 낭독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곁들이는 포맷을 갖고자 할 것이다. 시인 아니래도 좋고 소설가가 아니래도 좋다 내게 인상적인 글 이라면 소리내서 읽어보자. 읽는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는 낭독과 음독이 있다. 사전에서 보면 문학작품을 소리내어 읽는 경우 낭독이라고 하고 일반적인 문장을 읽을 때는 음독이라고 한다. 낭독이 예술적인 자기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면, 음독의 목적은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이다.
소리내어 글을 읽는 것은 책과 몸이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다. 독서하면 눈으로 읽는 시각 중심의 독서가 오늘날 일반적인 모습이다. 프랑스의 로제 샤르티에 말을 빌리자면 낭독에서 묵독으로 그리고 경전에 대한 집중적인 독서에서 일반서적에 대한 광범위한 독서로서 점진적인 이행을 독서혁명이라고 부른다. 낭독과 묵독은 언제나 공존하는 책 읽기 방식이다. 특히 19 세기 작가가 일반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작품을 읽는 대중 낭독회는 황금 시기였다

올해 가을에는 천자문을 서당에서 몸을 흔들어 가며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글을 깨우치듯 소리 내어 몸과 같이 읽을 생각이다. 천자문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것은 중국 남조 양 나라의 주홍사 (470-521 년)가 쓴 책이다. 양 나라 무제는 왕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왕희지가 쓴 탁본 천 자를 모아 중복되지 않도록 문장으로 만들기를 고민하던 중죄를 짓고 사형 받을 위기에 처한 주홍사를 떠올렸다. 무제는 그의 학식과 재주를 안타까워 하던 터라 자신이 모아 놓은 글 천 자를 주어 중복되지 않도록 문장을 만들면 죄를 사면해 준다고 했다. 주홍사는 밤새도록 문장을 만들었는데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검은 머리가 하얗게 쉴 정도였다. 머리가 하얗게 쉬도록 고민하여 지은 문장이라는 의미로 백수문 이라고도 했다.

천자로 읽는 우주의 이치 우주와 인간사의 온갖 이치를 천 개의 글자 안에 담고있다. 첫머리에서는 당시 동아시아 사람들의 우주관 즉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천지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그 자체가 이미 스스로였다는 것과 사계절의 생겨남과 농사짓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기강과 마지막으로 어조사를 바로 쓸 줄 알아야 문장을 제대로 구사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으로 성숙하게 깨우치게 된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천자문은 ‘언재호야’ 로 끝나는 사자일구 250구로 이루어져있다. 선조 때 명필 석봉 한호가 쓴 ‘석봉천자문’이 대표적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이천 자로 구성한 아학편은 우리식으로 후손들을 교육시키고픈 선조들의 자주적인 의식에서 집필된 것이다.
이 가을에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작품이 창조되는 신비로운 순간을 체험하리라. 작심삼일이 되지 않길 마음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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