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가을 이야기

2004-09-3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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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옥<자원상담자>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건너편 언덕에 안개가 심산유곡처럼 짙고, 누운 자리가 아랫목처럼 따듯하니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기가 싫을 만큼 공기가 쌀쌀하다. 어려서부터 아침잠이 많아 어머니께서 아침마다 깨우시느라 힘이 많이 드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삼 사 학년쯤이었던 가, 어느 날 어머니께서 큰소리로 깨우시며 하시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영옥아, 빨리 일어나 봐라. 저 건너편 언덕에 까마귀가 하얗게 얼어죽었구나.
아마 초가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눈곱 붙은 얼굴로 뛰어나와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만 뜰에 덜렁 서 있을 뿐 하얗게 죽어 있다는 까마귀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그새 해가 나서 다 녹았나보구나. 어디로 날아갔지?
눈도 깜짝 안 하시고 이리저리 돌아보시는 우리 어머니의 천연스러움에 한동안 아침마다 일어나 얼어죽은 까마귀를 찾았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항상 수도를 틀면 더운물이 콸콸 나오는 요즘 같은 세상에 추운 아침에 아궁이에 걸어 놓은 솥에서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떠서 대야에 붓고 세수 할 때의 따스함을 아이들과 나눌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 어머니의 재치 있는 아이 깨우기도 옛날 이야기가 되어 효력이 없다.
엄마, 까마귀가 얼어죽을 만큼 이곳은 춥지 않아요.
이불을 감고 돌아누우며 하는 똑똑한 딸애의 대답이다. 스산한 가을 바람에 나도 늙어 가는가 문득 옷깃이 여며진다.

일흔을 훌쩍 넘기시고도 매일 아침 산행을 거르지 않으시고 노인 대학 일로 바쁘셔서 방학 전에는 아들집에 오실 시간이 없으시다 는 시어머님께서 언젠가 흘리듯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몸은 늙어 가지만 아직도 마음은 열 다섯 처녀 때 같으니 달라 진 것이 없구나!
두분 어머니께서도 꽃다운 처녀 때 마음으로 추억에 담고 그리움의 향수로 간직되어있는 그 분 세대의 감성과 꿈이 가득하시겠구나 생각하니 겨울방학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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