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어버이 살아신 제…

2004-09-2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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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선 희 (서예가)

며칠 전 LA에서 죽은 지 열흘 만에 발견된 노인분의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이 일 앞에 나무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이 없으니, 우리네 가슴이 무엇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지 조상들이 남긴 귀한 말씀으로 되짚어, 우리네 마음 매무새를 통곡으로 다듬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명심보감 거의 뒷부분인 팔반가 팔수 편에서 놀라운 지혜를 대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를 대하는 방자한 자식들의 모습을 일깨우는 글을 만나, 나도 결코 예외일 수 없기에 정신이 버쩍든다.
명심보감은 고려 충렬왕 때 추적이라는 문신이 서술했다고 한다. 개인의 인간수련에서 한 가정, 사회, 국가에 이르는 원칙론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 도덕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이라면 삼강오륜 만큼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면서도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 어버이와 아들, 임금과 신하, 위아래, 친구 사이의 인간 관계의 질서를 밝힌 금언인데, 그것도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여덟가지의 머리가 바뀐 노래인 팔반가 팔수에 실려있는 지혜 중 한글로 풀어 쓴 부분을 옮겨 적는다.

어린 자식들은 여러가지 말을 하되 그대가 듣기에 늘 싫어하지 않고, 어버이는 한 번 말을 하여도 잔소리가 많다고 하느니라. 부질없이 살핌이 아니라 어버이는 근심이 되어 그리하느니라. 흰머리가 되도록 긴 세월에 아는 것이 많으니라. 그대에게는 늙은 사람의 말을 공경하여 받들고, 젖냄새 나는 입으로 길고 짧음을 다투지 말 것을 권고하노라. 어린아이의 오줌과 똥 같은 더러운 것은 그대 마음에 싫어함이 없고,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는 것은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는 뜻이 있느니라. 여섯자나 되는 몸이 어디서 왔는고.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의 몸이 이루어졌느니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어가는 사람을 공경하여 대접하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하여 살과 뼈가 닳도록 애를 쓰셨느니라. 부하고 귀하면 어버이를 봉양하기 쉬우나, 항상 어버이는 미안한 마음이 있고 가난하고 천하면 아이를 기르기 어려우나, 아이는 배고프고 추운 것을 받지 않는다.
어버이는 지극히 그대를 사랑하나 그대는 그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식이 조금이라도 효도함이 있으면 그대는 곧 그 이름을 빛내려한다. 어버이를 대접하는 것은 어둡고, 자식을 대하는 것은 밝으니 누가 어버이의 자식 기르는 마음을 알 것인고.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질없이 아이들의 효도를 믿지 말라. 그대는 아이들의 어버이, 또 부모의 자식도 되는 것을 알아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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