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동양 고전을 이야기하다가 보면 흔히 동양 고전 운운하는 것은 전통에 얽매이는 보수적인 것이고 심지어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동양 고전을 제대로 읽어보면 고전 읽기는 전통에 얽매이는 것도 고리타분하거나 케케묵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동양 고전은 그 표현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스스로 자연의 이치와 도를 깨달아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아가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최종목표로 하고 있기에, 고전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야말로 고전을 벗어나 자유로운 현재의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양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고전은 아무리 위대한 성인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이상의 것이 아니다. 동양 고전은 여러 곳에서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해주고 있기에 참으로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실히 따른다면 우리는 고전을 통해 고전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장자(莊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있으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있으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는다. 말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알고 나면 말을 잊는다(「외물(外物)」편).
한편 주희(朱熹)도 「독대학법(讀大學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大學)』한 책에는 정경(正經)이 있고 장구(章句)가 있고, 혹문(或問)이 있으니, 보아가고 보아오면 혹문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장구만 보아도 곧 될 것이요, 오래하면 또 다만 정경을 보면 될 것이요, 또 오래하면 자연이 한 권의 『대학(大學)』이 자신의 가슴속에 있어서 정경 또한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동양의 고전은 고전을 읽되 고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바로 알아 마침내는 고전을 버리고 자기 삶을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나 사자는 돌을 던지는 사람을 물지만,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쫒아간다(獅子咬人 韓 逐塊)는 선불교(禪佛敎)의 유명한 경구(警句)들도 마찬가지이다. 석가가 죽기 전에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은 뒤에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한 말을 선사(禪師)들은 더욱 분명하고 철저하게 언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 또한 진리를 바로 안다면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무엇을 전술(傳述)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사철)가 운행되고 온갖 만물이 생장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는 이치, 하늘의 뜻을 스스로 살피고 깨달아 안다면 어디 누구의 말이 더 이상 필요하겠는가? 다 군더더기일 뿐이다. 이와 같이 고전의 가르침을 참으로 충실하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고전을 통해서 결국은 고전을 벗어나는 것이 된다. 고전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진정 고전일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어떤 특정 사상의 이데올로기나 편견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마지막에는 그 고전 자체도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충고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국(中國) 당대(唐代)의 임제선사(臨濟禪師)는 심지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그래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떠한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투탈자재하게 된다(逢佛殺佛 逢祖殺祖, 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고 까지 하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