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새 먹이

2004-09-1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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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옥<자원 상담자>

우리 집 작은 아이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서있는 나무를 개미나무라며 방과후면 들려 정신 없이 바쁜 개미들에게 인사를 하곤 한다. 나무 밑에 배를 쭉 깔고 누워 어디선가 먹이를 찾아 입에 물고 잰걸음으로 집을 향해 오는 일개미들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며 신이나 한다. 어쩌다 축축한 마른 풀 밑에서 쥐며느리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보물 단지처럼 손에 쥐고 뜻밖의 횡재에 어쩔 줄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온다.
글을 배울 때도 좋아하는 동물 그림 옆에 알파벳을 적어 S는 바다 수달(Sea otter)의 S, P 는 펭귄(Panguin)의 P하고 가르치면 눈이 커져서 열심히 듣곤 했다. 바다 동물 이름을 웬만한 어른들보다 많이 알아서 소라게, 문어, 해마하고 그림책을 보며 큰소리로 읽어 가끔 학교 교사진을 놀라게 한다. 동네 고양이를 보면 맨발로 뛰어나가 예쁜 목소리를 한껏 내어 너는 참 귀여워 하며 친해볼까 따라다니고. 사람에게는 전혀 아는 척을 안 하는 아이가 자기 guinia pig(조그만 설치류 애완동물)에게는 할 수 있는 말, 없는 말로 다정하게 말을 걸고 먹을 것을 갖다 놓아주며 정성을 다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사롭게 만든다.

자폐증으로 삶의 제약이 많고 이해하는 폭이 좁아 쉽게 좌절하는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무런 비평 없이 받아들이고 동정이나 비판의 눈이 아닌 순수한 포용을 동물들에게서 느끼는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무조건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게 마련인데 어려서는 어머니에게서, 젊어서는 연인에게, 중년에는 자식에게 가장 깊은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신기루 같은 지고한 이상을 찾아다니는 것이 인생 여정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작은 아이는 오늘도 성당 안 성수를 채우는 사제처럼 베란다에 내놓은 새 먹이 그릇을 정성껏 채운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거라,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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