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 가 보 안 법

2004-09-1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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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탁 <변호사· 애난데일, VA>

요즈음 한국은 국가보안법 폐기를 놓고 찬반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에 협력하는 행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법으로서 북한을 겨냥한 법이다. 이 법을 폐기해야 하느냐를 토론하기 앞서서 이 법이 아직도 유효한 지를 분석 하고자 한다.
법이 계속해서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 법이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집행되어야함을 전제한다. 필자가 보기에 문제가 되는 조항은 8조, 회합·통신 등의 조항이다.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전술한 바의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반국가단체의 총수와 회합하고 향연을 가진 것은 본 법을 위반한 행위다.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의 변명은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본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든가, 또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으로 추측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방북행위는 국민의 국가관과 군 장병의 주적 개념을 흔들어 놓았다. 북한의 군함이 남한의 영해에서 아군의 경비정에 발포를 해도 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군대로 전락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과 희희낙락하고 있는 동안 남쪽의 학생들은 인공기를 게양하고 김정일을 찬양했다. 나라를 이러한 사태로 만든 행위는 본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행위임이 틀림없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죄가 안 된다는 이론 역시 여하한 법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11조에서 명기한 바와 같이 모든 국민(대통령을 포함)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대통령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해도 상관없다는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을 줄줄이 위반한 인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은 앞으로 유사한 범법을 자행하는 여하한 자도 처벌할 명분이나 법적 근거를 상실하고 말았다. 앞으로 본 법을 집행한다면 이러한 정부의 행위는 선별적 기소(Selective prosecution)로 위헌적 행위임을 천명한다. 집행할 수 없는 무용지물과 같은 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버지니아 주에는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결혼을 금하는 법이 있다. 부동산 소유권 권리증(Deed)에 본 부동산은 “유색인종에게 이전할 수 없다”는 제한 (Deed restriction)을 명기해 놓은 권리증을 가끔 보게된다. 이러한 법이나 제한은 오늘날 집행할 수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폐기해야한다고 입씨름을 할 필요조차 없는 폐물에 불과 하다.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국가보안법을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여당이나, 이것을 고수하자고 주장하는 야당이나, 모두 필요 없는 일에 힘을 빼고 있음을 자각하길 바란다.
intak@intak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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