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개학날

2004-09-0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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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옥<자원 봉사자>

잔뜩 기대했던 여름방학 동안의 한가한 게으름은 집에 있는 아이들 삼 시 세끼를 챙겨 먹이고, 식구들이 좋아하는 책방, 동물원으로 다리품을 팔며 한 여름밤의 꿈처럼 날려보내고 어느새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풀기 먹은 새 가방에 차곡차곡 필요한 물품을 담아 넣고 새 학년으로 진학하는 긴장과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오른 큰애는 자기 아빠를 따라 평소보다 일찍 등교를 했다. 천방지축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작은 아이도 새로 시작하는 낯선 학교의 입구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내 팔을 꽉 움켜잡으면서도 용감하게 새 학년의 발자국을 내딛었다. 여름 방학동안 껑충 키가 자란 아이들이 서툰 기린처럼 어색하니 새 옷을 차려입고 낯익은 얼굴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바쁘게 자기 교실을 찾아 움직이고, 병아리처럼 고만고만한 유치원생들이 삐뚤빼뚤한 줄을 지으며 엄마 닭을 쫓듯이 담임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을 보며 아는 이들과 눈웃음을 나눴다.

알레르기가 심한 작은 아이 때문에 여름동안의 보수 공사로 먼지 낀 학교 놀이터를 아침부터 젖은 종이 수건으로 닦아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처럼 온몸이 나른하고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모든 신경을 아이들에게 쏟으며 하루 하루를 맞춰가다 갑자기 맞은 자유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다. 텅 빈 집안을 둘러보며 무엇을 먼저 해야하나 고민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미뤄 놓고 오랜만에 서두르지 않고 평화로운 아침을 먹었다. 어릴 때 소원이 큰방에 천장이 닿을 만큼 사방에 책을 쌓아놓고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으며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항상 해야할 일들은 산적하고, 자신을 생각할 여유 없이 신경 쓰고 마음 나눠주어야 하는 가족과 친지들 속에서 살며 잊고 살아왔던 꿈을 생각해 내고 그 소박함에 혼자 소리내어 웃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꿈을 키워 나가면서 살게 되려는지, 이다음에 어느 곳에서 나처럼 못 이룬 설익은 꿈 생각을 하며 웃으려는지 궁금해하며 개학 첫날의 전쟁을 치르고 나오는 아이들을 마중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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