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임금님의 삼겹살

2004-09-0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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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초의 더불어 사는 세상

김진태<사진관>

이이구 저놈의 뱃살을 어쩌누?
온도계가 극성을 부리며 올라가던 주말, ‘에어컨디션’도 안된 방에서 TV를 켜놓고 골프 중계를 보던 박 선생은 옆에서 퍼질러 앉아 두 다리 쭈욱 뻗고 대야 같은 국 대접에 가득한 물 말은 밥을 손가락으로 찌익 찢은 김치를 반찬삼아 열심히 입 속으로 들이미는 마나님의 삐져 나온 옆구리를 보고는 해서는 안될 소릴 하고 말았다.
’사돈 남말 하시네. 그러는 당신 배는 올림픽 수영 선수 같던 가요? 한마디 나가면 즉석에서 곱빼기 멍군으로 돌아오는 걸 알면서도 그만 입에서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내가 뉘 집 여편네처럼 케비아(철갑상어알)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더냐?로 시작해서 나도 최씨네 마누라같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골프나 치고 집안구석이야 개판이 되던 말던 상관 안 해야 정신이 들겠냐는 둥, 입 한번 잘못 놀린 박 선생의 일진은 아주 묘하게 꼬여가고 말았다.

아 그거 장난으로 한 마디 한걸 가지고 되게 물고 늘어지네 내 몸이 장난대상이라는 말이유? 말이야 솔직히 누구 배가 더 나왔어? 어허 나도 왕년엔 배에 임금 王자 쓰고 다니던 몸이야. 알통 삼삼하게 키우고 여름방학 때 대천 해수욕장을 거닐면 안쳐다보는 여학생이 없었다구 어이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천역덕스럽게 잘도 하시네. 밸트가 배꼽 밑에서 모양으로 걸린 배를 가지고 임금 ‘王’자 새겨진 일을 얘기 해 뭣해요? 그만 좀 작작 먹으라는 얘기야 야밤중에 도둑 고양이 모양 냉장고문 몰래 여는 사람이 누군대요? 나야 출출하니 간단한 요기거리 찾는 거고 당신은 퍼지고 앉아 대야를 비우고 있으니 어떻게 신경을 안 쓸수 있겠오?
다른 남정네들 눈길 받기 싫어 그러니 퍼져도 그냥 내 버려 두세요 열녀 났네 열녀났어. 미친년 궁둥이 둘러대듯 둘러대는 덴 도가 텄어 그 멋지던 임금 ‘王’자가 기둥이 부러졌네요 너무나 더워 웃통마저 벗어제치고 TV에 열중하던 박 선생은 고개를 숙여 배를 내려다본다. 분명 임금 ‘王’자가 있던 배에는 기둥이 없어지고 석삼(三)자만 남아 있다. 배꼽 밑으로 한 금, 그리고 배꼽 위로 두 금, 그렇게 선명한 석 삼자가 빙그레 웃고 있다. 그 석삼(三)자 뭔지 아세요? 그게 바로 삼겹살이라고요. 공포의 삼겹살

아― 임금의 신세가 이다지 처량하게 망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닌게 아니라 요즘은 앉아서 양말 신기도 약간은 벅찬 듯 싶고 화장실의 체중계가 오래돼서 고장일거라고 굳게 믿던 박 선생이었다. 골프중계는 이미 물건너고 말았다. 마나님과 티격태격하는 동안에 우승권에 누구누구가 들어있는지 스코어들은 어떤지 전혀 가늠이 안 된다.
어떻게 하던 이 말싸움을 잘 운영하여 영예롭게 빠져 나가야할게 급선무다. 어이구 이놈의 날씨하고는 올핸 더위 모르고 지나는 여름인가 했더니 드디어 다리를 무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말 돌리지 말아요. 나도 더위에 열 받았다고요 열 받았으며 냉수로 샤워나 하시지 그래 샤워로 가셔질 열이 아니래두요 하여튼 박 선생은 오늘 코기 꿰어도 단단히 꿰였다. 골프 중계만 끝나면 뒤뜰에서 마나님과 삼겹살 구워가며 소주한잔 하려던 박선생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기둥 부러진 임금 王자가 삼겹살 삼자라는 소리에 입맛이 싹 달아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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