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치 앞의 미래

2004-08-24 (화) 12:00:00
크게 작게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캐나다의 한 곳에 있는 이 산길은 한 쪽이 깎아지른 절벽인데다 많은 커브와 비탈길로 위험하지만 지름길이라는 이유 때문에 트럭 운전기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어느 해 심한 폭설이 지나간 겨울, 그 험한 절벽 밑에 며칠 전에 추락한 트럭 한 대가 햇빛에 반사되는 것을 보고야 사람들은 사고가 난 것을 알고 기중기를 이용해서 그 트럭을 끌어 올렸다. 그 때 그 안에서 부상을 당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몇 시간인가 살아있다 죽은 듯한 운전기사의 편지를 보고 그 곳에 있던 경찰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울었다는 얘기가 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제일 먼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오. 당신은 내가 당신 보다 내 트럭을 더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건 절대 아닌 것 당신은 물론 알고 있지. 그 동안 당신이 어떤 불평을 했을 대 내가 이해하려 더 노력하지 못한 것 모두 미안하오. 나와 아이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온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항상 하고 싶었소.
어쩌다 집에 오면 밀린 잠과 트럭 왁스칠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훌쩍 더나왔던 것이 지금 너무 후회되고 미안하오. 조금만 더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당신에게 더 따뜻한 말들을 했었어야 하는데... 나는 당신의 기도가 항상 내가 가는 길 위에 있었음을 알고 있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학예회, 생일, 기념일 등 집안의 일들에 무심했던 나를 용서하시오. 어쩌다 길 위에서 전화하면,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보고싶다는 말, 고생한다는 말 대신에 대부분 위엄 있는 목소리로 ‘나 잘 있어, 거기 별일 없지’ 하면서 급히 전화를 끊었던 일들이 지금 무척 후회가 되오.
집에 돌아왔을 때 언제나 따뜻이 반겨주는 당신이 나에게는 영웅이요 안식처이고, 천사요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었소. 그래도 지금 생각하니 당신에게 청혼을 했던 일이 내 일생에서 제일 잘 내린 결정인 것 같으오. 당신 혼자 앞으로 아이들과 같이 살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걱정이 되오.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주시오.
이제 떠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으오. 내 몸은 지금 큰 부상을 당했지만 지금 내 마음은 당신한테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더 많이 고통하고 있소. 나는 우리가 함께 한 이래로 지금 처음으로 혼자가 된 것 같으오. 그래서 나는 겁이 나오. 내가 가는 그 곳에 당신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외롭고 슬프게 하오. 당신을 정말 사랑했었소. 안녕, 남편 빌”
이 글은 몇 달 전 ‘해피데이’에 실린 글인데 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해서 간추려 적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갑자기 죽는 경우를 주위에서 가끔 본다. 한 발자국 후, 1초 후, 1분 후, 하루 후의 미래를 인간이 알 수가 없다. 어제는 지나갔고 미래는 불확실하니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성공이다. 전하고 싶은 따뜻한 말들도 모두 오늘 해야할 것 같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