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셋집

2004-08-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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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옥<자원 봉사자>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이후 셋집 생활을 제법 오래했다. 볕 잘 들고 널찍한 버지니아 시골집에서 살다가, 옹색하고 어두운 집안에서 항상 곰팡이 냄새가 맴도는 셋집으로 이사와 마음 고생이 많았었다. 아침이면 창문에서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물로 벽이 축축하게 젖어내려 마치 비가 안으로 드리친 것 같은 착각을 주곤 했는데 알레르기와 천식이 있는 아이들 때문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내고 벽을 소독약으로 닦으며 승산도 없는 곰팡이와의 싸움을 하며 지냈다. 아마 작은 애의 장애를 알게된 집이라 더 스산하고 어둡게 기억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제품 장난감을 수출하는 무역업을 한다는 주인은 이사한지 일년이 채 못 되어서부터 집을 팔고 싶어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싸게 구한 집이라 전전긍긍 불편한 일이 있어도 숨죽이고 살다가 이년만에 인근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소원대로 남향과 서향 창문이 햇볕으로 가득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알바니 집답지 않게 뒤뜰이 넉넉해서 맘에 들었다. 저녁이면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고 벌레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따라 무당벌레며 거미를 찾는 재미로 여름을 보냈는데 큰애 말에 의하면 행운의 집이란다. 뒤뜰 서향 벽 밑으로 네 잎 클로버가 자라는 것을 찬찬한 딸아이가 찾아내서는 책갈피에 보물처럼 끼워놓고, 말려서 한국에 계신 할머니께도 보내드리며 하는 소리다. 참 오랜만에 정신 없는 우리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었다. 남편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으로 옮겨 마음 편해하고 작은 애도 병원 출입이 줄어 한숨 돌릴 때였다.

이사한지 세 해를 못 넘기고 이번에는 뒤뜰에 집을 짓겠다는 주인의 통보를 받고 세상일이 다 새옹지마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넓은 뒤뜰이 좋았는데 그로 인해 또 이사를 해야하니 말이다. 다행히 이자율이 낮아 지금 사는 집을 구입해 떠돌이 생활을 면하게 되었다. 어제 아래층 스튜디오를 세 놓으면서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힘든 일이 기쁜 일을 낳는 것을 기억하고, 나눌 수 있을 때는 자신도 그 처지에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 아낌없이 나눠 줄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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