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두율 교수의 석방을 환영하며

2004-08-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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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환 (클락스빌, MD)

송두율 교수가 가석방이라는 불완전한 석방으로 풀려나긴 했으나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송 교수의 투옥에서 석방까지의 긴 여정은 한국의 현실을 거울 보듯이 잘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민주주의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민주주의의 ABC이자 근간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송씨가 비록 좌파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성숙된 민주주의에서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야하는 것이다. 송 씨가 설령 북의 주의 주장을 대변한다 하더라도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민족 통일을 완수해야 하는 우리는 이해와 관용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남과 북이 재결합한다는 말은 서로 상이한 제도와 사상을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국과 통일하자는 것인가? 일본과 통일하자는 것인가?
70년대 중반과 80년대 중반에 걸쳐 두 번을 만나 본 나로서는 송두율 씨야말로 조국을 사랑하는 보기 드문 학자라는 인상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송 씨는 서울대학을 나오자 곧장 독일로 유학을 떠나 빠르게 박사학위를 따고 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재라고 다들 말한다. 송 씨는 독일 유학부터 지금까지 반평생을 조직의 민주 통일 운동에 헌신한 투사라고 말하고 싶다. 머리끝이 희어지도록 인생의 절반을 민주 통일에 바친 노 교수가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감옥으로 끌려가 옥고를 치르는 듯 하염없이 서럽고 가슴 아팠다. 분단이 외세에 의해 그어졌고, 결코 우리 민족의 의사가 무시된 채, 이 분단으로 재미를 보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꼭 지적하고 싶다.
민족 분단은 반세기를 넘어섰고, 한반도의 정전 상태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어가고 있다는 현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희망이 있는 민족이다. 절대로 남북 통일이 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사람답게 보지 않은 뿐더러 우리도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송두율 교수와 윤이상 교수는 여러 면에서 같은 점이 많다. 윤씨는 유신의 유령이 발광할 때에 독일에서 납치되어 안기부 지하실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고문 끝에 자살을 기도했었다. 송 씨에겐 윤 씨처럼 고문은 없었다는 것이 다르다고나 할까. 아무튼 세계적인 작곡가요, 학자인 민족의 두뇌들이 끝내 이국 땅에서 살아야만 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끝내 조국의 품은 그렇게도 쌀쌀하고 냉랭한 것인가?
만일 송두율 교수가 독재에 아부하고 권력에 아첨했다면 승승장구 출세의 가도를 달렸을 것이다. 돈도 명예도 마다하고 이국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며 민족의 영구 분단을 끝장 내려는 송 교수야말로 민족의 보물이자 귀감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악법도 법이라니 웃겨도 너무 웃긴다. 아직도 이 몹쓸 악법을 짊어지고 씨름을 하고있으니 민주주의는 잠꼬대인가. 역대 독재자들에게 빌붙어 출세를 한 바로 그들이 송 교수를 심판했겠지. 독재를 비호했거나 방관했던 세력들은 진정 송 교수를 시비할 자격이 없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누가 누구를 심판해야 할까. 참으로 주객이 뒤바뀐 게 아닌가 싶다.
그의 학문 활동이 민족 분단을 치유하는데 커다란 기여가 되길 다시 한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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