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흥사단 워싱턴 대회를 마치고

2004-08-1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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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대 <수필가. 흥사단 회원.훼어팩스, VA>

흥사단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3년 민족정신, 민족번영을 이루고자 만든 국민정신운동이다. 금년이 91년째, 지난 6일부터 2박 3일 이곳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의 매리엇 호텔에서 서울 본부와 LA, 시애틀, 필라델피아, 애틀란타, 수도 워싱턴 지회가 주최하여 도산 선생님의 정신을 기리고 서로의 정보교환, 수련과 단결의 시간으로 이뤄졌다.
청년 안창호는 1895년 청일전쟁 이후 나라의 주권은 일본에게 넘어갔고, 왕은 있으나 힘을 쓸 수 없는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였다. 1902년 미국 땅에 가서 배우고 힘을 키워 조국의 독립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선교사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영어도 서툴고 하니 청소일, 농장에서 감자, 사과 따는 일 등 열심히 일했다. 결혼 후 함께 미국에 도착한 부인 이혜련은 태어나는 아이들의 부양을 위해 가사청소, 삯바느질을 했다. 힘든 노동일로 파김치가 된 몸으로 밤에는 영어를 배웠다.
어느 날 중국인 장사꾼 틈에 끼어 들어온 조선인 고려인삼 장사끼리 상투를 집어 뜯으며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유는 자기 장사구역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누가 자기 구역을 새끼줄을 쳐놓았단 말인가. 그렇게 영어에 능통했단 말인가. 이때 청년 안창호는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 큰절을 계속하며 내가 잘못하였으니 이 땅까지 와 서로 싸우지 말라고 간청했다.
그후 안창호는 백인 가정에 정식 청소지기가 되어, 일찍 일어나 마당 쓸기, 집 청소 등 부지런히 성실히 일했다. 이에 주인은 그때까지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너는 다르다며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때 이 땅에서 몸소 배운 ‘충의용감, 정의돈수’ 즉 거짓말하지 마라, 참 되자, 용감 하라, 약속은 지켜라 등 운동이 우리 민족에게 일어나야 조국이 독립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내가 흥사단 회원이 된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월례강좌 노영찬 교수의 노자사상 강의에 매료되어 매번 나가게 된 것이 인연이었다. 이번 대회 둘째 날 자유토론 시간에 나눴던 이야기를 참고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서울 흥사단 본부 김소선 이사장의 얘기다.
이제 곧 흥사단 운동 100주년이 되는데 흥사단 운동은 본부와 각 지회가 긴밀한 정보교환 공유를 해야한다. 민족번영을 위한 운동, 시대에 맞는 흥사단 운동으로 현대화시켜 나갈 전환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미주 위원장 백영중 회장의 말씀이다.
6.25가 막 끝난 1956년 흥사단 1호 장학생으로 선발 도미하여 48년 동안 무일푼에서 시작, 미국 철강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다. 그가 처음 미국에 와 어떤 모임에 가서 서로 질투하고, 헐뜯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한다. 그는 흥사단 정신으로 거짓말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심했다. 언제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수영으로 몸을 단련하고 바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과 그의 회사 PACO Steel Co. 가 1999년 미국의 회계법인 Ernst & Young 회사가 주관하는 올해의 기업인 상을 수상했다.
그는 흥사단 발전에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있다.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해야할 일을 한 것밖에 없다고 겸손해 한다. 한국 본부, 지방의 지회와 미주의 흥사단 지회 단원들이 힘을 모으면 조국 한반도의 문제, 통일 문제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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