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수상-닭 장
2004-08-05 (목) 12:00:00
이이진 <훼어팩스, VA>
처음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리커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3명의 복면 강도가 들이닥쳐 몹시 놀랐다. 경찰서가 바로 건너편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역시 범죄 천국이라는 악명을 못 씻는 수도인 이곳 대도시의 불안한 공포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또한 들어오는 손님마다 모두가 똑같은 사람들로 보이며 불길한 생각이 수개월 계속 되었다. 결국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할 수 없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방탄 유리로 모두 막아 버리니 손님들로부터 많은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나도 또한 싫었다.
나는 이곳을 닭장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하루의 시작이 이 닭장 속에서 꼬끼오 “하이”하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닭장 밖에서는 저에게 “헤이, 칭크” “헤이 치노” 이런 인사들이 듣기 거북했었으나 “닭장이 싫어서겠지” 하며 속으로 참고 삭혀야 했다.
아침인사 꼬끼오- /눈이 뻘건 닭들 /이른 아침부터 찾는 술 /어이할꼬 저 병든 닭들 //저녁 인사 꼬끼오- /갈길 잃고, 꿈도 없는 닭들 /수면제로 찾는 술 /어이할꼬 영원히 갈 닭들
이렇게 시라도 읊듯이 중얼거리곤 했다.
하루는 아침 일찍이 젊은 청년이 술 한 병을 사고서 “Thank you, professor” 하고 인사를 했다. 아침부터 술이 덜 깨 헛소리하는 젊은이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미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고맙습니다 교수님“ 말끝마다 교수님이라는 말을 붙이곤 하여 나는 “어떻게 교수였는지 알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소사이어티 교수님이시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 뒤 그의 친구들하며 모두가 교수님이라고 불러 줘 ‘칭크’나 ‘치노’가 ‘교수’로 바뀌니 나쁘지 않았다.
어느 가을에 이 조그만 닭장 안에서 만들어준 복권 한 장이 ‘12 밀리온’ 짜리 복권으로 당첨이 되었다. 13개 주에서 처음으로 당첨된 이 복권은 술꾼의 행운이요 또한 나의 행운이었다. 이 닭장 문 앞에 ‘Sold a powerful ticket here’라는 거대한 현수막을 복권국에서 걸어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음 행운을 다시 찾으려는 듯 내 손을 만지며 악수를 청하고, 어깨를 두들기며 눈을 맞춰 보자 면서 다음의 행운은 자기에게 돌아온다고 즐거워하며 반가워했다. 그때부터 ‘럭키 스토어’와 ‘럭키 맨’으로 바뀌었다.
몹시 춥던 겨울 아침, 술이 깨지도 않고 비틀거리며 들어온 홈리스들. 눈이 뻘건 이 닭들이 저렇게 매일 퍼 마시니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더 나빠지라고 술을 팔 수도 없고, 썩어가는 간에 더 썩어가라고 술을 더 줄 수도 없고 이 모두 후회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따뜻한 물을 한잔 씩, 또 따뜻한 차 한잔씩 주어 온기를 찾게 해 주었다. 따뜻한 정종이라도 한잔 마신 듯 활기를 찾고 “대드, 대드” 라고 외쳐댔다. 그 뒤 많은 집 없는 이 들이 나를 ‘Dad’라고 불렀다.
15년간의 닭장 생활에 지치고 지쳐 이제는 은퇴를 한다는 소문이 금방 전해지면서 그간 chink, chino에서 professor, lucky man, dad, Mr. Lee 라고 부르던 고맙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Mr. Lee, 농담이겠지, 사실이냐, 왜 그만 두느냐, 귀국할거니, 떠날거니, 아프냐, 이유가 뭐니” 떠나면 안 된다고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 눈물을 보여준 사람, 할 얘기가 있으니 닭장 밖으로 나오라며 꼭 껴안아 주는 사람, 매일 간식을 가져다주신 인정 많은 할머니, 건강하라고 격려한 사람, 동네 퍼레이드에 꼭 참가하라는 사람, 도둑 지켜준 사람, 매일 주위 청소해준 사람. 이렇게 많은 격려와 충고로 위로해 주는 사람들에 고마움을 느꼈지만, 항상 썩어가는 건강을, 잃어가는 건강을 더 나빠지지 않도록 술을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지금도 한없이 미안함과 후회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아픔의 추억이 먼 훗날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라 믿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많은 격려를 받으며 퇴직하는 지금 미워할 줄 모르고 뜻 있고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큰 잔치라도 벌리고, 이 닭장을 부숴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