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계백숙

2004-07-0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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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어둠이 내려 깔린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이다. 내 손에는 맛이 있고 귀한 ‘영계 백숙’이 들려있다. 몸에 좋다는 인삼과 대추 그리고 찹쌀을 배 안에 가득 넣은 닭이다. 교회에서 성가대원들이 저녁식사로 먹고 남은 것이다. 대원들이 보통 때 보다 많이 참석하지 않은 탓으로.
성가연습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다. 오늘은 친정 엄마의 생신이다. 동생들과 축하 점심을 푸짐하게 식당에서 같이 먹고 잠시나마 즐겁게 해 드렸다. 그런데 한쪽 구석의 마음에는 석연치 않은 서운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왠지 나도 모르는 마음이다. 아마도 풍족하게 해드린 선물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손에 들고 나온 ‘영계 백숙’은 서운해했던 친정 엄마의 생신을 조금이라도 더욱 흡족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얻은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친정 엄마가 살고 계시는 동네는 끝에서 끝이다. 순간 귀찮은 생각이 들며 몸이 피곤해지고 졸음이 온다. 아직까지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따뜻한 ‘영계 백숙’과 국물이 가득 담겨져 있다. 자동차의 운전석까지 앉으면서 곰곰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 ‘갈까 말까’ ‘아냐, 엄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랴. 80세가 넘으셨는데.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면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어서 못할꺼야’하는 강한 마음이 난도질하는 것이다.
비가 오는 늦은 밤이건 피곤해서 졸리운 시간이라도 가자, 갖다 드리자, 엄마에게 “생신 또 축하해요”하면서 드리자 하고 엄마 집으로 향해서 달렸다. 가기 싫고 귀찮은 마음을 효녀의 마음으로 금새 바꾸어 버렸다. 엄마에게 맛있는 ‘영계 백숙’ 갖다 드리고 나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으며 그날은 잠을 깊이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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