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이 빼앗는 것
2004-06-30 (수) 12:00:00
전지은/간호사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단위마저 깨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기유학. 예전엔 아이들이 유학생이 되고 어머니는 여행비자를 6개월쯤 받아 왔다갔다했다.
그러나 9.11 이후 여행 비자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공립학교에서도 아이들의 편·입학을 받기 전에 적법한 비자가 있는지 확인되어야만 아이들의 입학을 허락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충족시키기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엄마의 유학. 엄마가 유학생 비자를 받으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직계가족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자녀들은 돈 한푼 안 드는 공립학교를 갈 수 있다.
한국 중학생의 사교육비 정도면, 해외에 나와서도 절약해 살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생활하기에 충분하단다.
열성 엄마들은 영어가 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학교의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고 영악하리 만큼 학교에서 주는 모든 이익을 알뜰히 챙긴다.
아빠들의 정신상태도 많이 변하여 이젠 아내와 자식들을 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내보내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처럼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거나 주위로부터 무능력자의 취급을 받는단다. 한국 중산층 이상에서 부모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녀들을 해외로 내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 시류에 떠밀리듯 사회 전체가 합심하여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를 밀어내려는 것을 본다.
퇴근 후 정성스레 차려진 저녁 식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향긋한 차 한잔 놓고 마주앉아 하루의 이야기 들어줄 상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친구와 동료를 만나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잔을 기울이며 풀어내는 푸념보다는 건너 방에 불이 켜진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따스한 눈으로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 을까.
꼭 유학을 와야 한다면 마음도 몸도 튼튼한 청년기에 오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준비된 자세로 청운의 꿈을 안고 오는 젊은이들은 씩씩하게 바르고 옹골찬 걸음으로 앞을 보며 걸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