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꽃밭의 인생교육

2004-06-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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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대 <훼어팩스, VA>

LA에서 살던 사람이 이곳 워싱턴으로 이사왔다. 여기 살아보니 봄부터 가을까지 각종 꽃들이 피고 지니, 봄에 잠깐 꽃이 피는 LA 보다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세상에 꽃보고 싫다고 인상 찌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하찮은 들국화이더라도.
나는 지난주 ‘사람 꽃밭’에서 미국의 현실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매 2년마다 한번씩 받는 부동산 재교육 반에서 느낀 이야기이다. 2년 전에는 여자 비율이 60% 였다. 이번에는 85%가 여자 부동산 종사자였다. 나이는 20대에서 70대까지 수많은 ‘꽃’ 가운데 내가 앉아있었다.
문득 시골 남녀공학 중학을 다닐 때 수줍음을 많이 탔던 남자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이 아무개 나와 발표하라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밑을 기어 나와 여학생 쪽은 쳐다보지 못하고 복도를 향해 서서 발표하고, 허리 숙여 기어서 제자리로 돌아갔던 친구였다. 내 평생 앞에도 여자, 옆에도 여자, 뒤에도 여자 속에 그것도 얼굴 색이 나와 다른 꽃밭에서 받는 교육은 처음이다.
오전의 강사는 변호사가 담당했다. 제리라는 남자로 자신을 실용주의자, 현실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상식을 이용해라. 경찰 앞에서는 말을 하지 말아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게임이다”는 많이 듣던 얘기도 해주었다. 강사는 차별대우 즉 Discrimination 얘기를 무척 강조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종교차별 등을 남에게 이야기하면 1866년에 제정된 민권법에 적용되며 최소 벌금이 1만 달러이고 피해자에게 지불된다고 설명했다. 얼굴 생김새,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차별하는 말을 하거나 종교가 서로 다르다고 타 종교인을 비판하는 말을 하면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각 주의 주법이 다르고 카운티 마다 법이 다를 수 있지만 연방법이 최고 위치의 법이니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다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 개인의 눈으로 사람 모양, 종교의 차이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입으로 남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이라는 구속 아래, 어느 누구든 법을 지켜야 한다니 속된말로 표현하면 무서운 나라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문화에서 살다 온 우리 이민 1세 들은 “모르면 당한다” 는 생각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남의 인격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어울리며 화합하여 국가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가려는 법 집행자의 뜻도 있을 것이다.
오후의 강사는 금발의 여자였다. “고객을 교육시켜라. 전문가는 감정적이지 않고 조용해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 합리적인지 아닌지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100명이 넘는 수강생이었다. 다양한 연령층,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인생의 경험이 서로 차이가 나는 분위기였지만 유능한 강사는 학생들의 질문과 잡음을 정리, 재치있게 교육을 마무리하는 인상적 모습을 보였다.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갈등 없이 조정해 가는 능력은 역시 전문가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8시간 강의에, 나이 차이가 50살이 넘게 났지만 편가르기 좋아하는 한국의 유행어 ‘386세대’ 등 이상한 표현은 한마디도 없었다. 386 말이 나왔으니 첫째 언론이나 방송에서 386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치 말아야 한다. 헌법의 국민의 국방의무 규정에 종교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이것이 386세대의 3.8 따라지 판사의 법 상식인가. 워싱턴에서 서울을 향해 고함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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