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존칭

2004-05-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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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때문에 가까워질 수 없는 우리 (1)

노재경<국제회의 통역사>

어릴 때 크고 작게 혼날 짓을 많이 한 기억이 있는 데 크게 혼이 난 기억은 유일하게 한 번뿐이다. 다행히도 말 잘 듣고 착한 첫째 아들, 둘째 딸, 그리고 셋째 딸을 두었던 덕에 넷째인 내가 태어났을 때에도 혼을 내는 경험이 부족했던 부모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도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유일하게 크게 혼난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큰언니와 말싸움을 격렬히 하는 중에 큰언니를 언니라 부르는 대신 그만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싸움 중이라 언니라 부르기가 너무 억울해 이름을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전무후무하게 시원스럽게(?) 한 번 불러보았을 뿐인데 그 자리에 엄마가 계시는 바람에 크게 혼이 난 것이다. 그 때부터 존칭에 대한 미움이 싹 텄는지도 모를 일이다.

존칭은 말 그대로 공경하여 높이 부르는 칭호인데 공경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억지로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할 때가 허다하다. 단순히 누가 먼저 태어났고 나중에 태어났는가를 알려주는 오빠, 누나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식당에서 여자 손님과 웨이츠레스 사이에서 서로를 부를 적당한 호칭이 없으니까 언니가 통용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가 오래 가는 것도 존칭과 서열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때 만났고 언제라도 그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영원히 재경이일테고 그 친구들의 애들한테는 재경이 이모일테니까.

교수님, 목사님, 사장님, 부장님, 자매님 (서로를 부를 적당한 말이 없어 교회에서 억지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느낌이 짙은 존칭이지만), 전도사님, 집사님, 스님 등등을 넘어 심지어 마땅한 직업 내지 직함이 없으면 너도 나도 선생님이라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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