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물 안 개구리

2004-05-26 (수) 12:00:00
크게 작게
노재경/국제 회의 통역사

북가주에 위치한 인구 약 10만명의 리치몬드에 있는 법정에 통역을 위해 출두했다. 법원 서기에게 다가가 피고인 누구누구를 위해 한국어 통역으로 왔다고 소개했더니 캄보디아어 통역이 이미 와 있다고 내 서비스는 필요 없으니 가라한다.
캄보디아어와 한국어는 영어와 불어처럼 별개의 언어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50대 후반의 백인 여자인 그 법원서기와 말이 안 통해서 알았다고만 하고 집에 가는 대신 한인 피고인을 위해 판사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앞에 나가 동시 통역을 했다.
얼마전 미시건 주 서부의 조그마한 그랜드 래피즈 공항에 내려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기사가 말이 하고 싶어 백미러로 계속 흘끗흘끗 보다가 입을 열었다. 60대의 미국인 백인 남자였는데 지난주에 아주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며 자랑을 하고 싶어했다.
나에게 던진 질문은 아시아 전역에서 구사하는 언어가 두 개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만도 30개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말을 하면 너무 놀랄 것 같아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알고 있었다고 짧게 답했다.
미 남부 아칸소 주의 조그마한 시에서 통역할 때의 일이다. 중국집에서 혼자 책을 보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백발의 노부부가 내가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벌려진 입도 닫힐 줄을 몰랐다.
그 부부의 말은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젓가락질을 하는 것은 보았으나 실제 식사때 사용되는 것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고 실제 사용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우물 안(대학, 한국, 교회, 직장 등등)에서 배운 것이 세상의 모든 지식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위험한 것은 우물 밖의 소식을 접하지 못해 우물 안에서 들은 얘기가, 정보가 100%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다행히 우물 밖의 소식을 어느 정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나라에 살고 있다. 그 혜택을 충분히 인식하여 21세기 정보의 홍수 시대에 미디아 비판도 가차없이 하고 우물 안의 사고방식도 가차없이 깨자. 그래야만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