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밥해준 값

2004-05-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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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받은 한 독자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혼을 한 여성입니다. 서류 접수후 마지막 판결까지 근 3년이 걸렸는데 남편의 퇴직금을 결혼생활 햇수에서 반으로 나누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내 변호사가 ‘밥을 해바친 값’이라고 짧게 대답하더군요. 남편은 입에 거품을 물면서 저주와 악담으로 나를 모독하여 판사가 경찰을 부를 지경이었습니다.
‘밥’을 해바친 대가라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내가 해준 밥을 먹고 학교를 마쳐 인생역전을 했으니까요.
한국여성처럼 지극정성으로 남편의 밥상을 차리는 여성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겁니다. 특히 나는 한국마켓이 없는 곳에 살았는데 남편은 순 토종 한국음식만 좋아했기 때문에 뒷뜰에 온갖 야채를 심어 자급자족했고 7일에 한번 서는 야시장에 새벽에 나가 생선을 사다가 365일 찌개와 국을 끓였습니다.
어느 땐가 그가 혼자 3주간 한국 나간 사이 밥솥을 씻어 엎어버리고 단 한번도 쌀을 씻지 않았어요. 밥하기에 지쳐버린 거지요. 그러니 ‘밥값’이라면 받아 마땅한 퇴직금의 절반을 받은 것이니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는 요즘 다듬고 씻고 주무르는 한국음식 하는 시간을 줄여서 책 읽고 영화보고 드라이브 더 많이 하며 멋지게 살고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신문 한국판에 실리는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에서 읽은 글이다.
“누구나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부인께선 무얼 하십니까? 직장이 있는 아내라면 직장을, 부업을 하는 아내라면 그 부업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렇게 대답해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정말 아내는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 십수년째 아내와 함께 집에 있는 나는 아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 돈을 벌지 않으면 집에서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주눅든 얼굴로 그렇게 대답해야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돈을 벌지 않는 일은 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을까”
위의 두가지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숭고한 일,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위해 밥을 하는 성스러운 일이 사회적으로 가장 인정받지 못하고 보상받지 못하는 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결혼생활이 대단히 불평등하며, 전적으로 여자만 힘들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의 한가지 현상만 예로 들어도 잘 알 수 있다.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여자들은 ‘처녀시절로 돌아간다면’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결같이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모르니까 했지, 알면서 왜 다시 이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도 그럴까? 천만에, 정반대다.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남자를 내 주위에서 거의 본 일이 없다. 오히려 너무 좋아하며 ‘다른 여자와 빨리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결혼해서 남자는 편하고 손해 볼 것이 없는데 반해 여자는 힘들고 무지하게 손해본다는 것이다.
남자는 결혼 안하면 불편하지만, 여자는 결혼하면 불편하다. 면사포 벗는 그날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가사노동에, 임신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며 시댁 눈치보는 일까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고생에 시달리게 된다.
미국에 사는 여성들은 거기에다 맞벌이까지 해야하니 얼마나 더 불쌍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을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대우를 받는 것이다.
판사가 퇴직금의 절반은 ‘밥 해준 값’이라며 아내에게 줄 것을 명령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다. 밥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어야겠다. 그것은, 아내가 밥해주는 일이 밖에서 돈 벌어오는 일에 못지 않은 숭고한 노동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남편들이 늘어나면 저절로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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