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아주 가까운 곳
2004-04-27 (화) 12:00:00
김옥수<화가>
어느덧 세월이 가고 이순을 넘기게 되면서 남편과 나는 우리가 묻힐 곳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산호세에 우리 교회의 묘지가 있다. 우리도 그곳에 묻히면 되겠다 정하고는 마음 편하게 살았는데....
바쁘게 살고 있는 아들과 딸이 늘 안스러웠다. 마음들이 여려서 어쩌다 우리가 고단하다. 힘들다고만해도 건강 조심하라,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라는 등 늘 걱정을 하고있는 아이들에게 교회묘지가 참으로 먼 곳이 되겠구나, 어떤 면으로든지 부담을 주지 말고 편하게 해주자는 생각이 났다.
행여나 우리가 가고 없는 훗날에 바쁘게 살아가는 아들과 딸이 찾아오기 쉽도록, 비행장 가까운 곳(Colma)에다 이불 한 자락 펴고 누우면 꼭 알맞을 넓이의 쉴 곳을 마련하고 돌아온 그날 많은 생각이 맴 돌았다.
나는 아직도 끝이 없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도 비우지 못하고, 세상만사에서 해탈하지 못한 체, 게으르게 살아왔다고 나 자신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나에게 자유를 주지도 못하고, 정도 떼지 못한 체 연연해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이세상을 떠날때는 초여름 어느 날 어스름 저녁이 올 때 손발 깨끗이 씻고 이른 잠자리에 들어가듯 편안스럽게 그렇게 떠나고 싶다.
요즈음 남편은 매일 아침에 눈만 뜨면 콤퓨터 앞에 앉는다. 서울에 나가있는 아들 내외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제 먹은 저녁이 맛이있었다든지 며늘애의 논문이 드디어 통과되었다든지 하는 짧은 소식을 보내온다. 희끗 희끗 시작되던 머리칼이 하얗게 바래진 아버지에게 보내는 효심이어서 곁에서 보기도 참 좋다.
우리가 가고 없는 훗날에 아들이 먼 곳에서 아버지가 몹시 그리울 때, 하고싶은 말이 가슴속에 가득 찰 때, 찾아 와서 아버지께 속 마음을 풀어 놓으면 아버지는 그곳에서 잔잔히 들어 주겠지! 번거로운 것 싫어하는 딸 아이도 찾아오기 쉽도록 우리들의 다정한 친구들이 여행중에라도 잠깐 둘러서 정겨운 몇 마디 주고 갈수 있도록 아주 가까운 이곳에다 우리들의 쉼터를 정해 놓고는 오랜 우정도 저버리지 않았고, 살가운 사랑도 모른다 하지 않은 이 결정이 참으로 잘한 결정인 것 같아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가볍고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