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수필가>
22년 전 나는 신문에다가 <두 멕시칸>이란 제목의 산문을 썼었다.
이런 내용이다. 미국에서 처음 다니던 직장에 호세라는 멕시칸이 있었다. 코도 크고 건장하게 생겼다. 언제나 눈만 마주치면 배시시 웃는 데 왠지 그 웃음이 슬퍼 보였다. 웃지 않을 때면 웃던 자국 따라 주름이 생겨서 초라한 모습이었다. 마치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사람처럼 매사에 한 발짝 물러서는 그의 큰 체격은 작게 보여지기 시작했으며 멕시칸들은 정말 이 땅에서 괄시받고 사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얼마 후 남가주에서 월리라는 작달막한 키에 콧수염을 기른 멕시칸이 전근 왔다. 이 친구는 처음부터 유창한 영어로 직원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껄껄댔다. 일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캘리포니아는 자기들의 땅인데 백인들에게 빼앗겼다며 옛 주인 행세를 했다. 38세인 그는 23세의 귀여운 백인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였다는 그녀는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빽빽한 월리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들의 탐스런 아기를 꼬옥 안아주고 있었다.
그는 내게 이 대륙의 원주민인 멕시칸, 에스키모, 한국인도 몽고족 후예가 아닌가. 다만 문명이 먼저 깨인 백인들이 황색인 땅을 빼었을 뿐이야. 우리도 너희처럼 부모 섬기고, 아내는 지아비를, 자녀는 부모를 섬긴단다. 그런 말도 했다.
미 대륙으로 뿌리를 내리는 한인들도 이처럼 두 분류로 나뉘어져 살아가게 될 것이며 우리도 월리처럼 살자는 속마음을 내비친 글이었다. 그 당시 새로 이민 오는 사람들을 돕는 한인 단체 게시판에 이 글을 부처 놓았었다고 들었다.
멕시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다. 그들의 속내는 알 길이 없지만 그들은 강대국에게 밀려난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멕시코는 빈부의 차가 심한 나라다. 인디오와 스페인계의 혼열인 메스티조들이 주류사회를 이루고, 재벌 중에 상당수가 세계 랭킹 안에 드는 갑부다. 그들의 돈이 어디에 저축되었는지 그것을 성토하고 대항하자는 월리처럼 강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대다수 서민들은 무관심하단다. 아직도 처음에 잘못 된 인디안, 인디오로 불리어 짐에도 개의치 않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아이덴티 마저 상실한 것은 아닌지 답답해 보인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던 한인들은 이구 동성으로 정해진 일만 하고 노력한다거나 창의적이길 기대 해서는 안된 다는 둥, 돈이 생긴 다음 날은 출근도 않는 다는 둥 그런 말을 한다. 그러니 당연히 타민족들이 그들 앞에서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과 오래 생활하다보면 정이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 우리들의 옛날을 생각케 한다고 말한다.
시골의 작은 도시 골프장에도 잔디 깍고 나무를 다듬는 주변 보수공사는 멕시칸들의 몫이다. 남자 들 뿐 아니라 우리 곁을 스칠 때면 수줍게 웃으면서도 열심히 손 흔드는 얼굴 예쁜 여인도 그 일을 해낸다.
올 겨울엔 심하게 비바람이 쳤다. 활짝 개인 다음날 골프장에 나무 한 그루는 뿌리째 뽑혀 넘어져 있었다. 그런데 여기 저기서 일하던 멕시칸들이 몰려들어 조심스럽게 마치 다친 사람 다루듯 나무를 세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문득 그들의 모습에서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이 땅을 백인들에게 내 주었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생각났다. 땅을 팔라는 백인들에게 성스런 땅을 어떻게 사고 파느냐 던 추장의 말도, 자연을 자신들 몸의 한 부분으로 여기던 모습의 재연처럼 생각되었다.
지금도 그들은 청소차에 매달려 쓰레기 수거해 가는 일, 무덥고 힘든 도로공사의 인부, 남 집 담 장 고치는, 정원 다듬어주는 일, 몬트레이 농장의 힘든 농사일, 남들이 싫어하는 일들을 해낸다. 불법체류자로 단속했다가는 당장 농사지을 인력이 태부족해진다. 지금도 오클랜드 29가 근처에는 많은 멕시칸들이 길거리에 서서 일당으로 팔려가길 기다리고 있다.
정성 드려 나무를 일으키는 모습들을 보고 온 후 식탁에 앉아 야채를 먹으면서, 쓰레기를 내다 버리며, 말끔해진 도로를 달리며 남을 위해 일하는 그들의 고마운 손길을 느낀다.
2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한인들은 월리처럼 당당하게 사는 것 같다.
깨인 민족들이 더 나은 문명의 삶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여 고개 들고 살 때, 멕시칸들은 고개 숙여 자연과 함께 전처럼 순리대로 산다. 예전에는 우리들이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처럼 지금도 그들은 좁은 집에서 많은 식구가 몸 비비며 산다.
외형과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외로워진 한인들에게 그들과 우리 중 누가 더 행복한가를 묻는다면 이제는 정말 대답할 자신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