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의 조건

2004-04-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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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차가운 눈보라가 지나가고 노란 개나리가 곳곳에 피기 시작하면 우편함에 두툼한 결혼 청첩장이 하나씩 오기 시작한다. 어떤 신부감을 원하느냐고 결혼 시즌을 맞아 동네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글쎄요 별로 원하는 것 없어요. 그저 신체 건강하고 인물은 그대로 좀 괜찮고 성격도 무난해야지요. 키요? 키도 좀 커야지요. 2세를 생각해서라도 우리 아들이 좀 작은 편이니까요. 학력도 웬만은 해야지요”
“아주머니 별로 원하시는 것 없으시다면서 전부다 갖추어야 한다고 욕심 부리시는 것 아니예요?”
물론 아니라고 그의 엄마는 얘기하지만 아들 말로는 “우리 엄마 맘에 드는 여자 만나서 결혼하려면 평생 장가 못 갈 것 같다”고 한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리요 만은 자기 자식들이 항상 최고라고 생각하는 탓인지 어떤 이는 내 딸 만한 사위 없고 내 아들 만한 며느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다 성사된 결혼인데 혹시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요즘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특히 LA쪽 사람들에 의하면 결혼조건을 A, B, C, D, E 라고 한다는데 Age(나이), Background(배경), Character(성격), Degree(학력), Economy(경제, 돈)이라서 무슨 백화점에 물건 사러가듯 리스트를 가지고 배우자를 찾는다니 듣는 사람마저 머리가 띵해진다. 어떤 어머니는 결혼 적령기에 있는 아들에게 “얼굴은 예쁘지 않아도 마음씨 고운 여자를 찾아라 얼굴은 내가 성형시켜주면 예뻐지지만 마음은 성형이 안되니까”라고 했다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부모의 재산이 결혼조건에 큰 몫을 차지해서, 소위 말하는 일류신랑감이라는 의사 사위를 보려면 열쇠 다섯 개(아파트, 사무실, 자동차, 별장, 금괴의 열쇠)를 가지고 오도록 한단다. 이런 사실이 한국뿐만 아니고 이곳에서도 가끔 눈에 띄어 열쇠가 다섯 개까지는 아니더라도 3개 정도를 요구한다고, 그런 집안에, 그리고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그런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고, 또 엄마 아빠 고민하시는 거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결혼 한 달 전에 그만둔 워싱턴 아가씨의 현명한 판단에 박수를 보냈다. 그대로 대부분의 많은 젊은이들이 건전한 사상으로 부모를 설득해서 많은 돈 들이지 않고 간소하게 결혼하는 것을 곁에서 보면, 정말 흐뭇하다.
물론 결혼은 무언가 쉽게 해 치워버리기엔 조금은 두렵고,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너무 부담 없이 결혼하여 서로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지 말아야겠다.
내게 결혼 조건을 물으면 첫째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지, 둘째는 두 사람이 1시간, 하루, 1년, 평생을 같이 있어도 편안할 만한 사람인지, 셋째는 꿈을 같이 키워 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이다. 승자는 주머니 속에 꿈이 있고 패자는 주머니 속에 욕심이 있다고.
그렇게 결혼해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다가 라도 가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는 잠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는 기분으로 마음을 비우고 서로를 의지하면 해결 방법이 나오고 그렇게 인생은 다시 굴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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