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껍질과 속살

2004-04-1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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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김<회사원>

특별한 날, 특별한 손님을 위한 별식을 대접하고 싶으면 어머님은 게요리를 하신다. 시장에서 집게발을 딱딱 벌리는 회색빛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 쓴 놈들을 사와서 요리를 하면 그 껍질들이 모두 먹음직스러운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너무나 맛있는 게요리이지만, 만약 배가 너무 고플 때라면 덥썩 먹으려고 달려들었다가는 무척 짜증이 난다. 꾾임없이 손과 입이 바쁘게 움직이는 데도 정작 목구멍을 넘어가는 살점은 얼마 없는 것이 게요리이다. 배가 적당히 고프다면야 그 껍질 깨는 수고를 기꺼이 맛있는 게살을 먹는 즐거움과 바꿀 수 있겠지만, 뱃 속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으르렁대는 중에 게껍질을 부수고 살을 꺼내는 과정은 너무나 귀챦다.
손과 입주변을 모두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들로 더럽히며 게를 다 먹고 나도 내 앞의 접시는 조각조각 난 게껍질들로 먹기 전보다 오히려 더 수북하다. 아마도 내 뱃 속으로 들어간 게의 속살보다 버려진 껍질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우리가 게의 속살을 쏙쏙 파먹고 껍질은 버리듯 사람들의 ‘껍질과 속살’ 중 속살은 진짜이고 껍질은 가치없는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게의 속살을 그토록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그 겉 껍질의 보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게가 살아가면서 껍질은 거추장스러운 외투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해 주는 갑옷이다. 만약 게에게 껍질이 없다면 그의 여리디 여린 속살은 빠른 물살과 모래 그리고 적들의 공격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너덜더덜 해져 버릴 것이다.
몸과 마음이 부쩍부쩍 커지는 사춘기에는 세상의 모든 껍질이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이미 만들어 놓은 껍질에 맞추어 자신의 속살을 상처입히며 밀어 넣어야 한다면 차라리 너덜거리는 속살을 내놓고 살아가는 것이 이 한 세상 값지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속살로만 버텨내기엔 이 세상의 파도는 너무나 드세다. 젊은이들은 나이가 먹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점점 껍질 속으로 들어간다.
껍질이 없다면 우리가 떠올리는 집게발을 가진 게의 형상이 되지 않듯이, 우리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는 껍질도 있고 알맹이도 있다. 껍질이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껍질이 필요하다. 껍질을 벗겨버리고 깨부수는 것이 그 순간 시원할 지 몰라도 그러다간 속살까지 다칠 수 있다. 그런 과격한 탈출 보단 내가 뒤집어 쓰고 있는 껍질이 너무 단단하고 나를 꼭 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나는 소망한다. 나의 그 껍질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여린 속살을 죄이는 단단한 껍질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나만의 껍질이기를, 게들은 제 속의 내장이 커지고 속살이 찌면서 자신의 커가는 속살을 품을 수 있도록 껍질도 함께 키워 나간다. 나는 나의 속살을 보호해 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만 속살과 함께 자라나는 그런, 내게 꼭 맞는 껍질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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